빵집마다 흔히 파는 크루아상(croissant)은 전쟁을 기원으로 한다. 1683년 합스부르크제국의 군대가 오스트리아 빈에서 오스만제국 침략군을 격퇴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빈의 제빵사들은 오스만제국의 상징인 초승달 모양 빵을 구워 승전을 기념했다. 크루아상은 프랑스어로 초승달이라는 뜻이다. 합스부르크 왕가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와 프랑스 루이 16세의 결혼으로 ‘초승달 빵’이 프랑스로 전해지면서 크루아상이란 이름을 얻었다.
[책마을] '악티움 해전'에서 졌다면, 로마제국은 없었다
빵 하나가 새로 만들어진 것뿐만 아니다. 전쟁은 인간과 사회를 바꾸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전쟁을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사회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러시아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지 1년이 넘어가는 시점에 전쟁과 관련한 책이 잇달아 출간됐다.

최근 국내에 나온 <전쟁은 인간에게 무엇인가>는 부제 그대로 ‘인간이 바꾼 전쟁, 전쟁이 바꾼 역사’를 폭넓게 살펴본다. 저자의 내공이 수많은 전쟁 서적 가운데서도 관심을 끌게 한다. 책은 저명한 역사학자 마거릿 맥밀런 영국 옥스퍼드대 세계사 명예교수가 BBC 라디오 강의 내용을 토대로 썼다. 라디오 강의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 풍부한 사례가 눈길을 끌지만 서구인을 대상으로 한 게 약점이었다. 한국 독자가 접근하기에는 어느 정도 배경지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편집자와 번역자가 원서에는 없는 여러 부연 설명을 추가했다.

맥밀런 교수는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전쟁을 흥밋거리로 접근하거나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감정적으로 호소하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썼다. “우리는 인간이 왜 서로를 거리낌 없이 죽일 수 있는지 이해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을 넘어선다. 우리가 왜 서로 싸우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미래의 전쟁을 예방할 가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나온 <보이지 않는 군대>는 미국의 무기·전쟁사 전문가 맥스 부트가 게릴라, 테러리스트, 반군 등을 중심으로 쓴 전쟁사다. 체 게바라, 오사바 빈 라덴 등 비정규군이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살핀다. 부트는 지난해 말 국내의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북한의 핵 포기가 멀어지게 됐다”고 지적한 인물이다. “우크라이나는 1994년 자발적으로 핵을 포기했는데, 러시아의 침공과 위협을 지켜본 북한의 김정은과 이란의 지도자들에게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공격받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을 심어줬다.” 그의 예언대로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핵실험을 이어가며 “언제든 적이 두려워하게 신속 정확히 가동할 수 있는 핵공격 태세를 완비해야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책은 꼼꼼한 자료 조사와 서술로 무장했다. 하지만 허점이 있었으니 원서가 2013년에 출간됐다는 사실이다. 10년 사이 소셜미디어 영향력이 극대화됐고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났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우크라이나 국민은 항전 의지를 다졌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여론전을 벌였다. 소셜미디어는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정보전의 공간이 되기도 했다. 책이 개정판을 냈다면 아마 이런 ‘사이버 게릴라전’이 한 챕터를 차지했을 것이다.

<악티움 해전>은 하나의 전쟁만 파고든다. ‘로마 제국을 만든 전쟁’으로 꼽히는 악티움 해전은 기원전 31년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세 영웅이 로마의 패권을 두고 벌인 전쟁이다. 지중해 세계의 무게중심이 서방과 동방 어느 쪽에 놓일지 결정한 세계사적 사건인데, 이 전쟁을 집중 탐구한 책은 이제껏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저자 배리 스트라우스는 미국 코넬대 역사학·고전학 교수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