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줄 너무 말라"…서울 재건축 사업지 줄줄이 경매
정부의 규제 완화 기조에 발맞춰 재건축·재개발에 나서는 노후 단지가 늘었지만, 사업 부실화로 조합 소유 자산이 경매에 넘어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방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이 어려워지면서 일부 정비사업지는 사업을 아예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20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대문구의 한 재건축 조합은 최근 조합 명의 통장이 압류된 데 이어 조합 소유 토지가 경매에 넘어갔다. 전임 조합 집행부가 토지 보상비를 지급하는 과정에서 대금 지급이 미뤄졌는데, 연체 이자가 불어나며 강제집행이 이뤄진 것이다. 한 조합원은 “현금청산 대상자에게 70억원에 달하는 보상비 지급이 이뤄지지 않았다”며 “지난달 통장이 압류됐고 이제는 조합 소유 부동산이 강제 경매에 들어간다고 하니 조합원들의 걱정이 크다”고 했다.

서울 강동구의 길동프라자 아파트 리모델링 조합 역시 최근 조합 소유 주택이 경매에 절차에 들어갔다. 단지는 오랫동안 추진하던 리모델링을 포기하고 재건축으로 사업을 전환했으나 그간 시공사로부터 받은 대여금을 반환하지 못해 연체 이자까지 물어줘야 하는 처지다. 갚아야 하는 원금은 27억여원인데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서 조합이 보유한 가구를 모두 매각해도 15억원 이상을 추가 변제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 조합원은 “최근 조합이 각출을 위한 동의를 받고 있다”며 “이후 재건축을 다시 추진하더라도 분담금이 높아져 쉽게 진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지역 정비사업지 역시 부동산 PF 시장 경색으로 부담이 커졌다. 부산의 한 지역주택조합은 최근 4개 금융회사가 PF 대출을 모두 거부하면서 10%가 넘는 브리지 대출 연체 이자를 물고 있다. 이자가 연체되면서 경매 절차가 시작될 수 있다는 통보가 전해지자 조합은 재건축 사업을 포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수도권의 한 소규모 정비사업지 역시 최근 브리지론 대출 이자가 급등하자 사업 포기를 위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조합원 절반 이상이 사업 포기를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대한건설협회의 ‘부동산 PF 관련 건설사 애로사항 실태조사’에 따르면 회원사들이 시공에 참여한 전국 PF 사업장 231곳 중 32곳(13.9%)이 사업 지연 또는 중단됐다. 응답 업체가 전체 중 10%에 불과해 PF 중단으로 사업이 지연된 곳은 더 많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히 건설사로선 착공하더라도 미분양으로 손해가 커질 수 있어 PF 대출 대신 자금 조달을 통한 브리지론 연장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정비업계에서는 자금시장 경색으로 조합과 시공사의 자금 부담이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대출을 못 받은 조합들이 사업비 증액을 요구하는데 이미 예비비를 투입하는 등 건설사 예산도 바닥”이라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