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찾은 서울 노량진동 학원가의 A 서점은 30분 동안 손님 세 명만 다녀갈 정도로 썰렁했다. 가판대에 놓인 책 31권 중 7·9급 공무원 시험 책은 다섯 권. 나머지는 임용과 토익 관련 책 등이었다. 서점 직원 김모씨(35)는 “가판대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공무원 시험 책이 팔리지 않고 있다”며 “궁여지책으로 수능 관련 교재까지 들여왔다”고 말했다.

한때 경쟁률이 93.3 대 1까지 치솟으며 전성기를 누렸던 공무원 시험 열풍이 사그라들면서 노량진 학원가가 몰락하고 있다. 지역경제를 이끌었던 수험생들이 떠나자 장사를 접거나 업종을 변경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수험생의 ‘의식주’를 책임진 업종은 직격탄을 맞았다. 건물 1~2층을 통째로 쓰며 가장 인기 있는 식당 중 하나였던 한식 뷔페 음식점 ‘레알짱’ 본점은 최근 규모를 절반으로 줄였다. ‘울엄마김밥집’이란 상호의 식당은 2021년 문 닫은 뒤 새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인근 상인은 “월 300만원이었던 월세를 절반으로 내렸지만 여전히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고 있다”고 귀띔했다. 15년째 장사한 ‘토스트 굽는 사람들’도 얼마 전 문을 닫았다.

노량진고시촌거리 끝자락에 있는 ‘세종고시원’은 지난 1월 문을 닫았다. 이 자리엔 법무사 사무실이 들어올 예정이다. 26년째 문구점을 운영 중인 홍모씨(56)는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에 비해 매출이 60% 이상 줄었다”며 “3층짜리 건물에 혼자 남았다”고 토로했다. 문구점 옆 상가엔 ‘임대 문의’라고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공무원 시험 학원들은 위기에 맞춰 변화를 꾀하고 있다. 수험생이 줄자 공무원 시험뿐 아니라 변호사와 노무사, 회계사 시험 등을 강의하는 학원이 속속 생겼다. 노량진의 공무원 학원에서 일하는 A씨는 “회계사 시험 등의 준비를 위한 특강이 최근 두 배 넘게 늘었다”며 “공무원 대신 전문직 도전을 더 선호하는 20~30대 특성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서울 신림동(현 대학동) 고시촌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20년째 제본 서점을 운영 중인 김모씨는 “작년까지 모의고사 책이 200부 넘게 팔렸는데 올해 50부도 안 팔렸다”며 “24년째 장사하고 있지만 올해가 가장 힘들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시원은 고사(枯死) 상태다. 대학동의 B 고시원엔 방 30개 중 4개만 입주자를 구했다. 고시원 ‘장원학당’ 역시 공실률이 50%에 달했다. 다만 대학동은 노량진에 비해 상황이 그나마 낫다는 게 지역 상인의 얘기다. 작년 5월 여의도 샛강역에서 서울대 정문 앞까지 이어지는 신림선이 개통하면서 직장인이 대거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안시욱/최해련/이광식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