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이냐 '공익'이냐…전시상황서 고민 깊어지는 우크라 언론
전쟁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언론인들이 정부 및 관료 비판이란 언론 본연의 의무와 공익을 위한 전시 보도 제한 의무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 초기 자국 정부와 군 당국에 대한 비판을 자제했던 우크라이나 언론인들이 최근 들어 관리들의 부패에 대한 보도를 재개했지만, 나라를 지키는 군에 대한 우호적 여론과 전시 검열 제도 때문에 고충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언론인 유리 니콜로프는 지난 1월 군용 식품 조달 계약에 대규모 비리가 있다는 증거를 확보했다.

자체 확보한 계약서에 몇몇 식품 가격이 슈퍼마켓 가격의 3배나 될 정도로 높게 책정돼 있음을 알게 된 그는 군의 전쟁 수행에 해를 끼치지 않으려고 보도를 포기할까 고민하다 결국 계약금 지급일인 2월 1일 전에 기사를 쓰기로 했다.

니콜로프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횡령된) 많은 돈으로 무기를 살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 정도의 돈이 실제로 횡령당했다면 우리가 전쟁에서 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1월 말 현지 언론에 게재된 니콜로프의 군 조달 비리 기사는 발전기 구매용 원조자금을 빼돌린 혐의로 인프라부 차관이 체포됐다는 뉴스와 함께 우크라이나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이 뉴스에 격분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은 국방부 고위 관리 2명을 포함한 15명의 중앙 정부 및 지방 정부 관리들을 경질했다.

옷을 벗은 인사에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키릴로 티모셴코 대통령실 차장도 포함됐다.

이처럼 정부 당국자들에 대한 고발성 보도에 대한 언론의 노력이 다시 활기를 찾는 듯 했지만, 군 자체에 대한 보도는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3월 발표된 전시 언론 제한 규정에 더해 군이 언론인들 역시 보호해준다는 폭넓은 공감대 때문이다.

전시 포고령은 전투 진행 상황 보도, 군인의 이름이나 얼굴 무단 공개, 장비와 병력의 소재 및 이동 상황 공개, 러시아의 침공 정당화 보도 등을 금하고 있다.

군인들이 허가 없이 언론인과 소통하는 것도 금지된다.

이런 이유로 우크라이나군 내부의 위법 행위에 대한 탐사 보도는 지금까지 단 한 건밖에 없었다.

지난해 8월 현지 온라인 신문 '키이우 인디펜던트'의 탐사 전문 기자 안나 미로뉴크는 외국인 자원병들로 구성된 우크라이나 '국제군단' 내에서의 조직적인 학대와 횡령에 대해 보도했다.

미로뉴크는 "(군 비리에 대해) 처음으로 보도한다는 것은 일종의 용감한 행보였다"면서 "어떻게 하면 국가기밀을 누설하지 않고 러시아의 선전전에 이용당하지 않으면서 잘 보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동료들과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전시 상황인) 지금 (군 비리에 대해) 보도할 필요성은 훨씬 더 크다"면서 "모든 돈은 우크라이나 방어에 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보도 사례는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자국 정부와 군대의 활동을 지원해야 할 공익적 의무와 진실 보도 및 비판이라는 언론 본연의 의무 사이에서 끼인 우크라이나 언론인들의 고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크라이나 미디어연구소 소장 옥사나 로마뉴크는 현재 자국 언론 상황에 대해 "온라인 미디어에서 국가와 정부의 활동에 대한 탐사 보도가 늘어나는 반면, TV 방송은 사실상 대통령실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면서 "현재 우크라이나에는 온라인과 TV라는 두 개의 미디어 공간이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