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자는 시젠(옛 시애틀 제네틱스)을 인수해 항체약물접합체(ADC) 시장의 선두주자로 도약할 수 있을까.

27일(미국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화이자의 시젠 인수설을 보도하면서 양사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미국임상종양학회(ASCO)에서 ADC 유방암 치료제 엔허투가 기립박수를 받은 이후, ADC는 항암 분야에서 가장 ‘핫’한 모달리티(유형)로 떠올랐다. 다이이찌산쿄가 엔허투의 개발사다. 이번 인수설의 대상인 시젠 또한 애드세트리스, 파드세브, 티브닥 등 성공적인 의약품 3개를 시장에 내놓은 ADC 분야의 강자로 꼽힌다.

애드세트리스와 파드세브, 티브닥은 각각 지난해에 매출 8억3900만달러(1조1044억원), 4억5100만달러(5939억원), 6300만달러(829억원)를 기록했다.

이 중 애드세트리스는 캐드실라(2조9296억원), 엔허투(13억1000만 달러, 2022년 3월~2023년 3월 추정)와 함께 2022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ADC 의약품 3위 안에 들었다. 개발 중인 ADC 후보물질은 시젠이 다이이찌산쿄보다 더 많다. 시젠은 8개, 다이이찌산쿄는 7개 후보물질이 개발 단계에 있다.

업계는 시젠의 실적이 상당 기간 우상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시젠은 지난해 20억달러의 매출을 냈다. 2030년에는 110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022년 애드세트리스는 전년 대비 19%, 패드세브는 33% 매출이 증가했다. 2021년 승인된 티브닥의 매출은 지난해 본격적인 판매를 시작하며 10배 이상 늘었다.

시젠의 인수 후보로 글로벌 제약사가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엔 미국 머크(MSD)가 400억달러에 시젠을 인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하지만 양사가 합의하지 못하면서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새로운 인수전 소식이 시장에 전해지며 이날 시젠의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10% 급증한 332억7800만달러(43조8700억원)로 뛰어올랐다. 화이자는 400억달러 이상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합병에 필요한 ‘실탄’은 충분하다. 사업보고서 기준 화이자의 지난해 순이익은 1003억달러였다. 단시일내 현금화가 가능한 단기투자액도 223억1600만달러다.

화이자가 시젠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간 상대적으로 등한시해왔던 ADC 제품군 구축을 단숨에 하기 위해서란 분석이다.

화이자는 세계 첫 ADC 의약품을 내놓을 만큼, ADC에 관심이 많은 제약사였다. ‘마일로탁’은 CD33 급성골수성백혈병(AML) 치료제로 2000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신속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이후 임상에서 효능을 입증하지 못하고 심각한 간 손상 등 부작용 문제가 대두되면서, 2010년 화이자는 자진해 마일로탁의 승인을 취하했다. 이후 투여용량을 줄여 2017년 FDA에서 재승인받았다. 매출 등은 공개하고 있지 않는 상태다. 2019년엔 흑색종 치료 목적으로 개발 중이던 ADC 후보물질 ‘PF-06688992’ 개발을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마일로탁 외 화이자가 보유한 ADC 제품으론 UCB제약과 공동 개발한 ‘베스폰사’가 있다. 재발 또는 난치성 급성림프구성백혈병(ALL)을 적응증으로 2017년 승인됐다. 지난해 매출은 2억1900만달러였다.

화이자는 독자적으로 ADC를 개발하기보다는 다른 기업과 공동개발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ADC 개발 협력사로는 2021년 공동개발 계약을 발표한 미국 픽시스온콜로지가 있다. ‘PYX-201’과 ‘PYX-203’을 공동개발 중이다. 픽시스온콜로지는 2020년 레고켐바이오사이언스가 ADC 후보물질 ‘LCB67’의 개발권과 세계 판권(한국 제외)를 이전한 회사이기도 하다. 픽시스온콜로지는 화이자메디컬에서 부사장을 지낸 라라 설리반이 설립한 회사다.

화이자와 시젠의 거래가 400억달러 이상 규모에서 성사될 경우, 2019년 애브비의 엘러간 인수(630억달러) 이래 최대 규모가 된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

**이 기사는 바이오·제약·헬스케어 전문 사이트 <한경 BIO Insight>에 2023년 2월 28일 14시 26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