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프랑스의 와인 무상(無常)
보르도는 ‘와인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가장 와인 생산량이 많고 고급 와인 산지로 이름난 곳이다. 12만3000㏊의 포도밭에서 1만여 개 샤토가 포도 농사를 짓고 와인을 만든다. 보르도는 ‘물의 가장자리’라는 뜻인데 도르도뉴·가론·지롱드 등 3개 강이 보르도를 3개 지역으로 나눈다. 지롱드강과 가론강의 좌안(左岸·레프트 뱅크), 지롱드와 도르도뉴강의 우안(右岸·라이트 뱅크), 가론강과 도르도뉴강 사이의 ‘앙트르 두 메르’이다. 세 지역의 토양이 각각 달라서 심는 포도 품종도 다르다. 와이너리들은 각기 다른 맛을 내는 여러 품종을 심어 블렌딩해 다양한 맛과 향의 와인을 만들어낸다.

프랑스 와인 생산량의 4분의 1을 담당해 온 보르도의 와인 생산자들이 “포도밭을 갈아엎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와인 소비가 줄면서 레드 와인 재고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쌓여서다. 와인 생산자들은 포도밭의 10%를 갈아엎는 대신 정부가 ㏊당 최대 1만유로(약 1370만원)를 보상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지난 13일 파리에서 열린 와인박람회에선 “팔리지 않은 와인을 하수구에 쏟아버리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프랑스 정부가 재고 레드 와인 일부를 공업용 알코올로 바꾸는 데 최대 1억6000만유로(약 2169억원)를 지원하기로 한 것은 이런 까닭이다.

프랑스는 와인 생산량 및 1인당 와인 소비량 세계 2위의 와인 대국이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의 와인 소비는 1980년대부터 줄어왔다. 1인당 와인 소비량이 70년 전에는 130L였으나 지금은 40L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2011년 보르도 와인 투어를 갔을 때 샤토 시오락의 대표가 “요즘 젊은이들이 와인을 마시지 않아 걱정”이라던 모습이 생생하다.

와인 소비가 줄어든 이유는 여럿이다. 점심에 와인을 곁들이지 않는 사람이 늘었고, 적게 마시는 대신 고급 와인을 선호하는 트렌드 변화도 한몫했다. 코로나19로 식당들이 문을 닫은 것도 소비 감소를 불렀다. 붉은색 고기를 덜 먹는 식습관 변화, 웰빙트렌드에 따른 술 소비량 감소도 원인으로 꼽힌다. 미국, 남미 등의 와인 생산·소비는 느는데 유럽 와인의 비중은 줄고 있다. 영원불변한 것은 없다. 프랑스 와인의 무상(無常)함이다.

서화동 논설위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