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남부경찰 관내 야간 입원가능 정신병동 12곳뿐…섭외 어려워
"야간 정신질환 응급환자 발생 시 빈 병실 파악 시스템 등 대책 필요"

14일 밤 경찰이 경기 용인에서 의정부로 이송하던 40대 정신질환자가 구급차 내에서 돌연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정신질환자 응급입원에 대한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5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신건강복지법은 자신의 건강 또는 안전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사람에 대해 응급입원 조처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경찰 '응급입원 전담팀' 신설했지만 '병원 찾아 삼만리' 여전
정신건강복지법의 전신인 정신보건법은 보호자 2명과 전문의 1명의 동의가 있으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 입원을 허용했으나, 재산 다툼이나 가족 간 갈등으로 멀쩡한 사람이나 경증 환자를 입원시키는 수단으로 악용하는 사례 등의 부작용이 생기자 2017년 5월 법이 개정됐다.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은 입원 기간 연장심사를 6개월에서 3개월로 단축하는 등 인권 침해 소지를 최소화하기 위한 각종 장치는 물론 응급입원 요청을 경찰관이 할 수 있게 하는 등 경찰의 적극적 개입 근거를 마련했다.

이후 이 업무는 신고 출동을 하는 지구대·파출소 직원들에게 맡겨졌는데, 병원 섭외가 되지 않아 경찰관이 환자를 데리고 병상을 찾아 수 시간을 헤매는 일이 반복되면서 치안 공백이 생기는 치명적인 문제가 나타났다.

특히 2019년 4월 경남 진주에서 18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방화·살인 사건, 이른바 '안인득 사건'으로 인해 변화 필요성이 대두됐다.

앞서 안씨에 대한 경찰 신고가 8차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경찰관들은 안씨에 대한 병원 입원을 추진할 여지가 있었지만,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징계 처분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고위험 정신질환자에 대한 전문병원 입원·연계 미흡 등 부실한 현장 조치가 2차 피해를 유발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졌다.

이에 2021년 6월 대전경찰청이 전국 최초로 응급입원 현장지원팀을 신설, 정신질환자에 대한 응급입원 업무를 전담토록 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역시 지난해 11월 응급입원 현장지원팀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지방경찰청 단위에서 전담팀만 신설했을 뿐, 현실은 과거와 달라진 게 없다는 게 현장 경찰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야간에만 운영하는 경기남부경찰청 응급입원 현장지원팀은 6명이 3명씩 맞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

출범 이후 90여 일간 107건의 현장 지원을 했다.

하루 평균 1건 이상의 응급입원 조처를 한 것이다.

인력 부족 등으로 인해 업무 자체도 고되지만, 병원 섭외가 여전히 어려운 것이 큰 문제이다.

경기남부경찰청 관내 정신질환자 응급입원 가능 병원은 36곳이다.

이 중 야간 입원이 가능한 곳은 12곳에 불과하다.

더욱이 야간에는 병상이 부족하다거나 전문의가 부재중이라는 이유 등으로 입원을 거절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이번 용인 정신질환자 사망 사건 당시에도 결국 관내 병원에 입원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자 경기북부경찰청 관할인 의정부의료원으로 환자를 이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4일 오후 9시 20분께 용인시 수지구 한 아파트에 층간 소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자택에서 소란을 피우던 정신질환자 A(42) 씨에 대해 응급입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가족 동의를 받아 같은 날 오후 10시 19분 A씨를 지구대로 데려왔다.

경찰은 병원 섭외 끝에 오후 11시 의정부의료원에 입원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병원 이송을 시작했다.

그런데 구급차 내에서 발작을 일으킨 A씨는 40여 분 만인 오후 11시 40분께 심정지 증세를 보였다.

A씨는 잠시 후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 CPR을 받았으나, 15일 0시 10분께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경찰 '응급입원 전담팀' 신설했지만 '병원 찾아 삼만리' 여전
신고 접수부터 병원 이송 시작까지 1시간 40여분, 또 타 지역에 있는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1시간여 등 정신질환자 1명의 병원 이송에 총 2시간 40분가량이 소요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야간에 정신질환자 응급입원이 가능한 경기남부 관내 병원은 12곳이지만, 이 중 절반이 부천·김포권에 있어서 용인에서 갈 만한 관내 병원은 6곳뿐이었다"며 "병원 이송이 어려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길바닥에서 시간을 허비하는 경우도, 멀게는 충청 지역의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통상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중앙응급의료센터를 통해 이송 가능한 응급실 현황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정신 응급 상황의 경우 빈 병실을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다"며 "이 때문에 환자 이송을 맡은 경찰관이 병원에 일일이 연락해 빈 병실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실정인 만큼, 관련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신과 보호 병동의 의료 수가가 현실화하지 않은 관계로 신속한 치료가 가능한 대학병원들이 정신병동을 줄이고 있어 이송이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정부 차원에서 정신과 보호 병동의 의료 수가를 현실화해 병동의 수 자체를 늘려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