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미국 경기가 ‘노 랜딩(무착륙·no landing)’할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강도 높은 긴축으로 그동안 경기 침체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소프트 랜딩(연착륙)’이냐 ‘하드 랜딩(경착륙)’이냐가 관심이었다. 하지만 아예 침체 자체가 없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 것이다.
연착륙도 경착륙도 아니다…美, 침체없는 '노 랜딩' 시나리오 급부상

강한 노동시장의 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경제학자 사이에서 노 랜딩 기대가 커지고 있다고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그동안에는 짧고 약하게 침체를 겪고 지나가는 것 정도가 최선의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성장세가 계속 이어지면서 침체 자체가 없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등장했다.

노 랜딩은 최근까지도 기대하기 힘든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고용, 물가 등 미국 경제지표가 긍정적으로 나오면서 최근 전문가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횟수가 부쩍 늘었다.

노 랜딩 가능성이 부상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노동시장 상황이다. 지난 3일 공개된 미국의 1월 실업률은 3.4%로 1969년 5월 이후 54년 만의 최저치였다. 1월 증가한 비농업 일자리 수는 시장 추정치의 3배인 51만7000개였다. 기술기업을 중심으로 한 해고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미국의 일자리는 여전히 충분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소비가 견조한 점도 노 랜딩 기대에 불을 지폈다. 마스터카드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의 소매판매(자동차 제외)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8.8% 늘었다. 상품 지출은 둔화했지만 서비스 지출이 크게 늘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지난달 가구당 신용·직불카드 사용액이 1.7% 늘며 작년 12월 마이너스(-1.4%) 대비 큰 폭의 개선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일부 주의 최저임금 인상 효과 등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동산 경기가 최악의 국면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미국의 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모기지) 금리 평균이 지난달 연 6.27%로 작년 10월 전고점(연 6.9%)보다 0.6%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모기지 금리가 내리면 주택 매수세가 살아날 수 있다.

미국 리서치회사 르네상스매크로의 닐 두타 이코노미스트는 “경기가 호전되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기 힘들다”며 “노 랜딩 시나리오는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

WSJ는 그러나 아직 미국 월가에서 노 랜딩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소수라고 전했다.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침체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 그 근거 중 하나는 기준금리 인상이 경제에 미친 영향이 실제 드러나기까지 시차가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6년엔 금리 인상이 고용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데 1년 반이 걸렸다. 또 미국 기업의 실적 약화도 변수다. 미국 보험사 네이션와이드의 미국 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인 캐시 보스차칙은 “기업의 수익은 갈수록 줄고 있다”며 “기업들이 고용을 줄이면서 올해 중반부터 경기 소강이 시작될 것”으로 내다봤다.

노 랜딩 과정에서 물가상승률이 어떻게 될지도 변수다. 통상 성장이 지속되면 인플레이션이 잡히기 힘들어서다. 얀 하치우스 골드만삭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 성장이 가속화할 경우 Fed의 목표인 2% 물가상승률을 달성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했다.

이 경우 Fed의 긴축 기조 전환은 쉽지 않을 수 있다. 오히려 금리 인상 폭이 커질 수 있다. 미국 경기가 최종적으로 노 랜딩하기는 힘들어질 수 있다. 엘렌 젠트너 모건스탠리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노 랜딩은 소프트 랜딩과 비슷한 개념”이라며 침체 정도가 더 낮다는 의미라고 했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