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2월 10일 오후 4시47분
사진제공=하이브
사진제공=하이브
SM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후배 창업자인 방시혁 하이브 의장에게 자신의 음악적 유산을 모두 넘기기로 했다. SM엔터 인수합병(M&A)은 주주행동주의 본격화와 최대주주로부터 이사회 독립, 대주주에게 집중된 경영권 프리미엄 소멸 등 국내 자본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총망라한 압축판이자 한 편의 드라마였다.

이 전 총괄이 SM엔터 지분 매각을 검토하기 시작한 건 2020년 겨울께다. 카카오·네이버·CJ·하이브 등 다수의 후보가 관심을 보였다. 이 전 총괄은 사세가 커진 후발 주자 하이브로 지분을 넘기는 방안에 거부감이 컸다. 카카오와 CJ 양자대결로 좁혀졌다. 한때 카카오와 긴밀히 협상하기도 했지만 수평선을 달렸다. 이 전 총괄은 지난해 8월 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이 사이 주주행동주의를 내걸고 2021년 설립된 신생 운용사 얼라인파트너스가 첫 주주행동 캠페인 대상으로 SM엔터를 점찍었다. 2022년 3월 주주총회가 타깃이었다. 이 전 총괄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이 매년 SM엔터 매출의 6%를 수수료로 수취해 총 1600억원을 받아간 점을 문제 삼았다. 프로듀싱 대가로 받아가는 수수료가 과도하다는 주장이었다. 당시만 해도 이 전 총괄은 지분이 1%에 못 미치는 얼라인에 큰 위협을 느끼지 않았다.

상황이 급변한 건 지난해 3월 주총에서다. SM엔터는 일반 주주를 등에 업은 얼라인과의 표대결에서 패배해 감사인 자리를 얼라인 측에 넘기게 됐다. 아티스트 데뷔에서 헤어스타일, 가사 한 줄까지 이 전 총괄이 좌우하던 관행도 외부인사에 의해 감시받기 시작했다. 결국 그는 한발 물러났다. SM엔터와 라이크기획 간 계약을 지난해 12월 종료했다. 올해 1월엔 이사회 과반을 사외이사로 구성하겠다는 지배구조 개선안도 발표했다. 하지만 얼라인은 여전히 사외이사 추천 권한이 이 전 총괄 측근들에게 있다며 평가절하했다.

논의가 평행선을 걷자 이성수·탁영준 공동 대표 등 4인의 이사 중 과반이 1월 20일 이 전 총괄의 동의 없이 얼라인 측 주장을 모두 수용했다. 이사회가 최대주주에게 반기를 든 유례없는 일이었다. 처조카인 이 대표를 포함해 이사들 모두가 이 전 총괄의 최측근으로 분류돼 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얼라인은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해지 후에도 이 전 총괄이 기존 발매한 음반·음원 로열티 수익으로 2092년까지 70년간 최소 500억원을 더 받을 수 있다는 별도 계약서를 확보하고 이 전 총괄을 압박했다.

이사회가 등을 돌린 데다 카카오도 현 경영진의 우군으로 합류하자 이 전 총괄은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올해 3월 주총에서 현 이사진의 임기가 연장되고 카카오의 유상증자도 완료되면 경영권을 잃게 되는 수순이었다. 자신의 지분을 프리미엄을 받고 팔 수도 없는 상황에 처했다.

이 전 총괄은 결국 하이브를 찾았다. 방시혁 의장도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고 인수 협상에 들어갔다. 기존 지배구조를 손보면서 ‘K팝의 아버지’ 이 전 총괄에 대한 예우는 보장하기로 했다. SM엔터 이사진은 하이브의 참전을 감지하고 카카오에 신주와 전환사채를 포함해 지분 9.05%를 넘기는 유상증자안을 7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통과시켰다. 하이브는 주당 12만원에 소액주주 지분까지 인수하는 공개매수계획을 10일 전격 발표했다. 방 의장의 최종 의사결정은 9일 밤 10시에야 이뤄졌다.

차준호/하지은 기자 cha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