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경. 사진=신민경 기자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경. 사진=신민경 기자
"테마 ETF가 출시되면, 관련 개별주들 팔란 신호 아닌가요?"

증시를 뜨겁게 달군 적이 있는 테마는 대부분 상장지수펀드(ETF)로도 출시돼 있다. 공급자 중심으로 형성된 펀드 시장과 달리, ETF 시장은 투자자 수요가 사실상 상품 출시의 필수 전제조건이어서다. 특히나 특정 테마 관련 종목을 추종하도록 설계된 테마 ETF는 투자자들이 '살 만한' 상품들만 시장에 진열된다.

최근 투자자들 사이에서 ETF 출시를 개별주의 악재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부쩍 늘고 있다. 인기 테마가 ETF 상품화될 즈음에는 이미 기대치가 관련주들의 주가에 충분히 반영된 상태여서, 단기 고점일 수 있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ETF 출시를 즈음해 주가 상승세가 꺾인 경우가 여럿이어서 투자자들로선 의구심이 들 법하다. 국내 최초 방위산업 ETF로 주목 받은 'ARIRANG K방산Fn ETF'의 이달 7일 기준 수익률은 지난달 5일 상장일 종가 대비 11%가량 올랐다. 같은 기간 시장수익률(8.3%)을 소폭 웃도는 성과였다.

하지만 ETF를 구성하는 개별종목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올 들어 지난 7일까지 수익률을 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13.3%)와 한화(7%) 등 일부 종목을 제외하고 대부분이 손실을 기록 중이다. LIG넥스원(-13.3%), 한국항공우주(-7.5%), 현대로템(-7%) 등이다. 작년 저점 대비 고점까지의 최대 수익률이 100%를 웃돌 정도로 드라마틱한 수익률을 냈던 이들 종목이 올해 들어선 지지부진한 것이다.
KODEX K-메타버스액티브 ETF의 상장 이후 흐름. 상장 후 단기간 오르다가 이내 작년 말까지 가파르게 하락했다./ 이미지=한국거래소
KODEX K-메타버스액티브 ETF의 상장 이후 흐름. 상장 후 단기간 오르다가 이내 작년 말까지 가파르게 하락했다./ 이미지=한국거래소
메타버스 관련주도 ETF 출시 이후 급등세가 확 꺾인 대표적 사례다. 코로나19 사태와 맞물려 가상세계가 폭발적인 주목을 받는 가운데 2021년 10월, 국내 관련주에 집중 투자하는 4종의 메타버스 ETF가 우리 증시에 상장됐다. 이들 ETF는 설정 이후 한 달간 오르다가, 그해 11월 중순부터 작년 말까지 약 1년 동안 속절없이 떨어졌다. 주요 편입종목인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관련주들의 하락세가 ETF 약세를 이끌었다.

이렇다 보니 인기 있는 테마나 섹터가 ETF 상품화된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일부 개별주 투자자들은 우려를 표한다. ETF 출시를 전후로 관련주 보유비중을 줄여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전문가들에게 '테마 ETF 출시는 관련주에 고점 신호다'라는 소문이 낭설인지, 사실인지 물었다.

전문가들은 '현상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라고 입모아 답했다. 김종협 키움투자자산운용 멀티에셋운용본부장은 "투자자들은 테마 중에서도 '세부 테마'에 투자하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가령 큰 틀의 '4차산업혁명'보다는 '인공지능'(AI)이나 '메타버스'에 관심을 더 가지는 식"이라며 "세부 테마는 주기가 상대적으로 짧은 데다, 변동성이 큰 중소형주로 이뤄져 있는 경우가 많아 자체 수급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했다. ETF 출시를 전후로 주가 등락 움직임이 부각되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란 것이다.

다만 ETF 출시가 개별종목 하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기보다는, 이슈몰이 이후 상품을 출시하다보니 공교롭게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했다. 자산운용사 한 글로벌운용 총괄은 "우리도 ETF 출시 타이밍이 구조적인 애로사항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운용사들에 따르면 통상 테마 ETF가 회사 내부에서 기획돼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심사를 거쳐 증시에 상장되기까지 최소 3개월, 최장 6개월가량의 시간이 걸린다. 수명을 가늠하기 어려운 게 테마주인 만큼, 잘 나갔던 테마도 출시 즈음해선 시들해질 수 있는 것이다.

자산운용사 ETF운용 담당 한 임원도 "결과만 보면 ETF 출시가 고점 신호라는 말이 틀리지는 않다"면서도 "테마에 대한 컨센서스가 형성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리고, ETF 출시에도 비슷한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뒷북 상장'은 업계로선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다"고 밝혔다.

김재욱 금융투자협회 부장은 "테마의 수명은 사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지 않느냐"면서 "테마의 지속성에 따라 향후 추이가 달라지는 것이지, 테마 ETF 출시를 줄곧 고점 신호로 인식하는 것은 과한 우려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테마에 대한 확신이 적은 경우 투자자들은 상장 초기 접근하기보다는 가격 흐름이 숨고르기 양상을 보일 때 진입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조언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