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8시간 근무해도 일당 8만원…60대 이상 고령자만 남아
저임금 노동자로 지탱해온 산업…인력 시스템 현대화도 시급

※ 부산공동어시장은 전국 최대 규모 수산물 산지 시장입니다.

근해 수산물의 30%가 이곳에서 처음 유통되고, 고등어의 경우 80%가 거쳐 가는 곳입니다.

부산 수산업의 '메카'이면서, 유통·가공업 등 후방산업을 이끄는 부산 수산업의 최전방 산업으로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부산공동어시장은 1963년 부산종합어시장으로 개장했고, 1973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꿔 현 건물인 남항으로 이전해 자리를 잡았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시설은 노후화했고, 60년 전 비위생적인 경매 환경은 개선 없이 이어져 오며 최근에는 경쟁력이 많이 약해진 상태입니다.

재개발 사업인 현대화 사업은 2016년 국비를 확보하고도 지난 8년간 첫 삽조차 뜨지 못하면서 업계를 지탱해온 대형선망 등 선사 일부가 다른 도시로 이탈할 조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부산공동어시장 위판 시스템의 실태와 지지부진한 현대화 사업을 둘러싼 우려 등을 5편에 걸쳐 보도합니다.

[흔들리는 부산 수산 메카] ② "제발 일해주세요" 인력난에 허덕
"제발 와 달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돌립니다.

그런데 한번 일을 하러 왔다가도 몇 시간 만에 돌아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환경이 열악한 것이죠."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수산물 분류 작업을 하는 항운노조 어류 지부 야간 부녀반 반장인 박미경(58) 씨는 "이제 일할 사람이 없다"고 밝혔다.

29일 공동어시장에 따르면 야간 부녀반의 일과는 보통 오후 10시부터 시작된다.

제주 해역 등 조업지에서 배로 운반된 수산물이 어시장 바닥에 하역되면 이를 경매에 올리기 전에 크기별로 분류해 나무상자에 넣는 작업을 한다.

고등어의 경우 특대 크기부터 사료용 고기까지 5단계로 분류해 가로 59㎝짜리 나무상자에 나눠 담는다.

크기에 따라 상자에 담기는 마릿수는 다르지만, 보통 한 상자당 무게는 18㎏ 전후로 비슷하다.

부녀반은 이 작업을 오전 6시 경매가 시작되기 전까지 꼬박 8시간 동안 한다.

자정부터 오전 2시 사이 선사 측에서 보온병에 담은 새참을 내오면 그때 잠시 허리를 펼 수 있을 뿐이다.

그나마도 먹고 쉬는 시간은 30분 남짓밖에 없고, 따로 음식을 먹을 곳이 없어서 바람이 덜 부는 공동어시장 한쪽 구석이나 화장실 옆에서 후다닥 먹고는 다시 작업을 한다.

여름밤이면 추위라도 덜 할 텐데, 공동어시장 주 종목인 고등어는 겨울이 성수기여서 노동자들은 칼바람을 견디며 밤새워 작업한다.

옷을 몇 겹씩 껴입고, 속장갑과 고무장갑을 겹겹이 껴도 뼈가 시릴 정도다.

부녀반 한 관계자는 "바람 막는 시설도, 전기난로도 없다"면서 "장갑이나 방한용품, 옷 등도 전부 작업자가 개인 비용으로 부담해야 한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흔들리는 부산 수산 메카] ② "제발 일해주세요" 인력난에 허덕
일이 끝나면 씻을 공간도 제대로 없다.

비린내 나는 복장 그대로 퇴근하는데 대중교통을 탈 때 눈치가 보이고, 어쩌다 택시를 타려 하면 냄새 때문에 승차 거부되기 일쑤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버틴 노동자의 하루 일당은 고작 8만원이다.

야간·연장 수당까지 포함된 것 보는 포괄임금제를 적용받기 때문에 시급으로 치면 겨우 1만원 밖에 되지 않는다.

박 반장은 "야간 수당이라는 것은 없고, 최저임금 수준의 돈만 일당으로 받고 있다"면서 "최저임금이 올랐고, 물가는 상승했지만 부녀반 일당은 10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서 노동자들로부터 더 외면받는 것 같다"고 밝혔다.

김명렬 항운노조 쟁의 2부장은 "편의점에서 일해도 최저시급이 9천620원으로 비슷한 돈을 받기 때문에 젊은 근로자들은 어시장에서 중노동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서 "노동자들에게 사측이라고 할 수 있는 어시장 법인과, 중도매인·선사 관계자분들을 개별적으로 만나면 이런 근로자의 어려움에 공감해주시고 임금 인상을 언급하지만, 막상 단체 대 단체로 만나면 저임금 상태를 개선해 주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현재 부녀 반에서 일하는 500명 남짓 작업자는 대부분 60세가 넘은 고령자이다.

[흔들리는 부산 수산 메카] ② "제발 일해주세요" 인력난에 허덕
한때 1천200명까지도 하룻밤 작업에 동원됐지만, 지금은 인력이 없어 500명도 겨우 맞추는 수준이다.

박 반장은 "제가 올해 58세인데 막내급이고 모두 언니들밖에 없다"면서 "야간반에 86세 언니도 일하고 있는데 시간이 조금만 더 흘러도 일할 사람은 급속히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부녀반 뿐 아니라 하역작업을 하는 남성 근로자인 양배반원도 연봉 3천만원의 저임금인 것은 마찬가지이다.

어시장 근무 28년 차인 최문석 어류지부 사무장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 달에 200만원 버는 게 똑같다"면서 "어려운 수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는 이해하지만, 노동자의 값싼 임금을 담보로 돌아가는 지금의 인력 시스템에 대해서는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매년 2∼3달 동안의 휴어기 때 노동자들의 임금이 끊기는 것도 문제다.

김 부장은 "휴어기 때 노동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농촌에 일을 나가기도 하는데 마늘밭에서 하루 일하면 14만원을 받다 보니 안 돌아오는 분이 많다"면서 "근로의 연속성이 보장되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시장의 인력난의 해결책으로 2019년 이전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쓰기도 했지만, 현재는 관련 법상 외국인 노동자를 쓸 수도 없어 규제 완화 목소리도 나온다.

부산공동어시장 측은 외국인 노동자 사용과 관련한 용역을 최근 완료해 고용부 등에 건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부성 항운노조 어류지부 지부장은 "부산공동어시장이 발전하려면 시설의 현대화 못지않게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향상과 복지 개선을 위한 소프트웨어의 현대화도 논의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