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돌보기 힘들고 갈 곳 없는 성인 중증 발달장애인 모여 생활
'1인 1실' 조이빌리지, 서비스 기준 향상 추구…바리스타 꿈꾸며 직업훈련
"우영우는 극소수·판타지…복지는 결국 돈과 인력"
"(이 친구를) 여기서 감당하지 못하면 집에 보내야 하는데 그러면 (그의) 엄마가 못살 것 같아요.

"
지난 10일 오후 경기 파주시에 있는 발달장애인 거주 시설 '조이빌리지'의 김미경 원장은 전날 새로 입소한 한 장애인이 낯선 상황에서 적응하느라 겪는 어려움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조이빌리지가 천주교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가 선정하는 제17회 '생명의 신비상' 활동 분야 본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발달장애인 생활 시설의 모습을 살펴보고자 현장을 찾았다.

발달장애인의 생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알고 싶다고 했더니 김 원장은 발달장애인 가운데 "청각이 매우 예민하거나 시각 자극에 굉장히 예민한 이들이 있다"면서 "(생활) 환경과 일상을 구조화해 날카로운 반응을 누그러뜨리고 감각 붕괴를 최소화할 방법을 연구하고 교육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시설 내부를 보여주기에 앞서 "사회 복지는 결국 돈이다.

인력이 더 보충되어야 한다.

아무리 성의가 있는 사람, 열의 있는 사람이 있어도 더 지원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영우는 극소수·판타지…복지는 결국 돈과 인력"
김 원장의 말대로 중증 발달장애인을 돌보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생활 공간은 2층에 있었는데 현장 직원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니 계단을 이용하라고 안내했다.

신규 입소자가 계속 승강기 버튼을 누르고 반복해서 타려고 해서 정지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입소자는 옷을 뒤집어 입기도 하고 실내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출입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처음 보는 기자에게 다가와 카메라를 여기저기 만지기도 했다.

밤사이에 그가 다른 입소자의 방문을 갑자기 열어서 잠을 방해하기도 했다고 직원이 전했다.

돌보는 사람이 적어도 1명은 계속 곁에 붙어 있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우영우는 극소수·판타지…복지는 결국 돈과 인력"
유근희(36) 씨처럼 환경에는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세심한 돌봄이 필요한 이들도 있었다.

그는 시각을 거의 상실한 발달장애인이다.

방에 딸린 화장실은 혼자서도 이용할 수 있지만, 음악을 듣거나 조이빌리지 내 여러 장소로 이동하는 등 일상에 필요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수시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이빌리지는 성년이 된 중증 발달장애인이 부모 곁을 떠나 돌봄을 받으며 생활하고 교육과 직업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한 복지시설이다.

성인 발달장애인들을 가정에서 돌보는 경우 부모의 연령이 높아지면서 특히 부담이 커지는데 거주 돌봄 시설은 이런 이들에게 몇 안 되는 희망이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들이 1998년 만든 기도 모임 '기쁨터'가 조이빌리지의 출발점이다.

회원들은 성인 발달장애인 주거공동체를 꿈꾸며 발달장애인 주간보호센터, 지역아동센터, 숲속학교 등을 시도했고 이런 경험을 토대로 2019년에 5월 조이빌리지가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조이빌리지에 입소한 이들(27명, 2021년 7월 현재)은 장애인 활동 지원급여제도에서 등급 결정 기준으로 삼는 종합점수가 상위 4% 안에 들어가는 최중증 발달장애인이다.

다른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거부당했던 이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발달장애인이 1인 1실에서 생활하는 것이 특징이다.

발달장애인 거주 시설에서는 과거 5∼10명이 방 하나를 같이 쓰기도 했지만, 요즘에는 2인 1실을 쓰는 곳도 꽤 생겼다.

하지만 1인 1실은 여전히 드물다고 한다.

조이빌리지에서는 입소자(정원 30명)를 돌보기 위해 27명의 정직원과 4명의 공익근무요원이 활동하고 있다.

또 공공기관 일자리 지원사업으로 파견되는 인력, 외부 강사, 봉사자 등의 도움을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활동도 시도하고 있다.

개관 후 3년 반 정도는 국고 지원이 없어서 어려움을 겪었고 작년 12월부터 당국의 지원이 시작됐다.

조이빌리지의 목표 중 하나인 발달장애인의 직업 훈련의 상황도 살펴볼 수 있었다.

'직업훈련반'으로 분류된 입소자 6명은 생활공간에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신규 입소자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들은 직업 훈련장을 겸해 마련된 조이빌리지 내 카페에서 커피 머신을 이용해 직접 여러 종류의 음료를 만들었다.

"우영우는 극소수·판타지…복지는 결국 돈과 인력"
직업훈련반인 김범진(33) 씨는 기자에게 원하는 커피의 종류와 농도를 물어본 뒤 금세 한잔을 내려서 건넸다.

각종 음료를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정도의 작업에는 큰 어려움이 없어 보였다.

그는 건물 안팎으로 드나들 수 있는 출입증도 소지하고 있었다.

혼자서 나가 길을 잃거나 사고를 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김씨를 비롯해 적응력이 높은 2명에게만 출입증을 주고 나머지 입소자들은 직원이 동행한 상태로 출입하도록 하고 있다고 김 원장은 설명했다.

김씨와 같은 이들이 바리스타 등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실제 일터를 확보하는 것이 조이빌리지의 다음 과제다.

외부 기관이나 사회적 기업 등과의 협업도 필요한 상황이다.

"우영우는 극소수·판타지…복지는 결국 돈과 인력"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천재 변호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해 많은 관심을 받았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과 같은 모델이 나올 수 있을지 김 원장에게 물었더니 "그런 분은 정말 극소수"라며 "판타지"라고 답했다.

그는 국내에 장애인 거주 시설이 많이 있지만 조이빌리지의 경우 "서구의 복지선진국 기준을 보고 일종의 모델을 만들려고 한 것"이라며 "자폐성 장애인이나 발달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기준 향상이 필요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발달장애인에 대한 서비스는 지체장애인과 달라야 한다면"서 장애인이 주거 시설을 벗어나 지역 사회 내에서 돌봄을 받고 일상을 보내도록 하는 이른바 '탈시설화' 기조에 대한 우려도 표명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