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때 단절…학계와 문화예술인 노력 끝에 복원
"탐라국부터 유래한 오래된 축제, 제도 개선과 관심 필요"

[※ 편집자 주 = 제주에는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으로 생성된 독특한 문화가 많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세대가 바뀌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주만의 독특한 문화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할 수 있지만, 독특한 문화와 함께 제주의 정체성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고 불안합니다.

근대화 과정에서 후진적이고 변방의 문화에 불과하다며 천대받았던 제주문화.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속에서 피폐해진 정신을 치유하고 환경과 더불어 공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제주문화가 재조명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시'라는 우리말은 '하던 것을 되풀이해서'란 뜻 외에 '방법이나 방향을 고쳐서 새로이' 또는 '하다가 그친 것을 계속해서'란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다시! 제주문화를 돌아보고 새롭게 계승해 나가야 할 때입니다.

연합뉴스는 이번 기획 연재를 통해 제주문화가 우리 삶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고 계승해 나갈 방법을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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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제주문화] (51)새봄 여는 '입춘굿'의 과거·현재·미래는?
"자청비 할마님(할머님의 옛말)이시여. 제주땅에 풍년 들고, 시민 모두에게 명과 복을 이어주옵소서."
새해 새봄을 여는 입춘굿이 열리면 심방(무당을 뜻하는 제주어)은 해마다 오곡의 씨앗을 제주 땅에 전한 자청비 여신에게 풍농을 기원한다.

탐라국 시대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오랜 제주의 전통 풍속이자 전 도민의 축제 입춘굿.
우리는 입춘굿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 유래와 현재, 앞으로의 과제를 진단해본다.

◇ 탐라국에서 유래한 입춘굿
「입춘(入春)날, 호장(戶長)이 관복을 입고 나무로 만든 소가 끄는 쟁기를 잡고 가면 양쪽 좌우에 어린 기생이 부채를 흔들며 따른다.

이를 낭쉐몰이(退牛, 소몰이)라 한다.

심방들은 신명나게 북을 치며 앞에서 인도하는데, 먼저 객사로부터 시작해 차례로 관덕정 마당으로 들어와서 '밭을 가는 모양'을 흉내냈다.

이날은 본 관아로부터 음식을 차려 모두에게 대접했다.

이것은 탐라왕이 '경전'(耕田)하는 풍속이 내려온 것이다.

」('탐라록'의 일부분 발췌. 문무병·㈔제주전통문화연구소 저 탐라국입춘굿놀이)
[다시! 제주문화] (51)새봄 여는 '입춘굿'의 과거·현재·미래는?
헌종 7년 1841년 제주에 부임한 이원조 목사가 쓴 '탐라록'(耽羅錄)에는 관덕정 앞마당에서 펼쳐진 입춘날 모습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됐다.

이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 마을의 원로인 호장(戶長, 아전의 우두머리)이 입춘을 맞아 관복을 갖춰 입고 탐라국 왕의 대역을 맡아 '친경적전'(親耕籍田)의 풍습을 흉내 냈음을 알 수 있다.

탐라왕이 몸소 쟁기를 끌며 모의농경 의례를 가졌다는 데서 유래한 친경적전과 낭쉐몰이를 재현한 것이다.

호장이 끌던 나무로 만든 소(제주어로 '낭쉐')는 탐라왕이 끌던 소를 상징했다.

탐라록 외에도 여러 기록에서 입춘 전날부터 당일까지 제주의 모든 심방이 모여 고사를 지내고 입춘굿을 하며 백성의 무사안녕과 한 해 농사가 잘되길 제주 1만8천 신들에게 빌었다는 내용과 여흥으로 가면극 형태의 고대극을 했다는 내용 등이 나온다.

제주 입춘굿은 탐라국 시대부터 유래한 새봄 맞이 풍농굿이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농경사회에서 치러지던 무사안녕과 풍요를 기원한 봄의 제전 중 하나다.

[다시! 제주문화] (51)새봄 여는 '입춘굿'의 과거·현재·미래는?
하지만, 제주의 입춘굿이 주목받는 이유는 탐라국 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기까지 오랜 기간 생명력을 이어왔다는 점과 모든 의례가 굿을 중심으로 치러져 제주의 뿌리 깊은 무속신앙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고 학자들과 문화예술계는 한목소리로 말한다.

제주의 입춘굿은 탐라국이 고려에 복속된 이후 그 위상은 낮아졌지만 제주목(濟州牧, 조선시대 행정구역상 제주는 제주목·대정현·정의현으로 구분)의 목사(牧使)와 수령에서부터 일반 백성에 이르는 전 도민이 함께 치르는 고을굿으로 그 명맥을 이어갔다.

기록을 보다 보면, 입춘굿을 하던 옛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화려하게 치장한 제주목관아의 기녀들이 입춘날 뭇 백성들의 시선을 받으며 걸어가고 심방들과 걸궁패들이 징과 북을 치며 흥을 돋운다.

이들의 화려한 거리굿 행렬로 인해 어느새 제주읍성 안은 흥겨운 축제분위기로 변했을 것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백성이 행렬을 따라가며 관덕정 앞마당에 모여들자 심방과 걸궁패들이 펼치는 굿과 탈굿 등 다양한 연희와 무속의례가 펼쳐진다.

제주에서 가장 높은 목사부터 관원, 심방, 일반 백성들까지 모두가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봄을 맞이하고 마지막에 한 해 농사가 잘 되길 빌며 입춘굿이 마무리된다.

입춘굿은 민(民)·관(官)·무(巫)가 하나 돼 신명나게 벌였던 제주의 축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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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계와 문화예술인 노력 끝에 복원
탐라국 시대부터 이어져 온 제주의 입춘굿은 일제 강점기 때 단절됐다.

1925년까지 전승돼오다 일제의 문화 말살 정책으로 인해 맥이 끊긴 것으로 보인다.

일제강점기를 지나고 4·3과 6·25전쟁, 산업화 시대를 지나면서 잊혀진 입춘굿이 어떻게 다시 제주 주민들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을까.

입춘굿과 관련한 자료는 매우 빈약하다.

탐라록과 같은 일부 과거 문헌자료와 1900년대 촬영한 사진자료 일부가 남아 있을 뿐이다.

이외에는 과거 입춘굿에 참가했던 심방들의 고증 정도다.

복원작업은 1960년대부터 시작돼 매우 더디게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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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또는 탐라문화제의 전신인 한라문화제 등에 출전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시도됐다.

1965년 제6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 '입춘굿놀이'라는 이름으로 참가한 뒤 1972년, 1998년 세차례에 걸쳐 같은 대회에 출전했다.

이밖에 1988년 제27회 한라문화제에도 '입춘탈굿놀이'로 복원한 경우가 있었다.

사실상 본격적으로 재현된 것은 1999년부터다.

그해 2월 제주시가 주최하고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회 제주도지회가 주관한 탐라국 입춘굿놀이가 74년만에 열린 것이다.

맥이 끊겨 대회나 행사 때 단편적으로 공연됐던 입춘굿이 입춘을 맞아 관덕정 광장에서 원형에 가깝게 대규모로 재현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이 과정에 진성기 전 제주민속박물관장과 문무병 제주신화연구소 이사장 등 연구자들의 끈질긴 연구가 함께 이뤄졌다.

입춘굿은 그 후 지난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부득이 열리지 못한 것을 제외하곤 현재까지 20년 넘게 맥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입춘굿은 2월 2∼4일 코로나19를 딛고 4년 만에 전면 대면행사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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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생 84% 입춘굿 본 적 없어
그러나 과제도 산적해 있다.

우선 입춘굿은 오랜 시간 이어온 원형 그대로의 복원이라는 당면 과제가 있다.

민속학자 문무병 이사장은 1999년 처음 입춘굿을 재현할 개최할 당시 "겨우 20%만 복원했을 뿐"이라며 지속적인 연구와 노력의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18년 뒤 2017년 2월 입춘굿 때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선 "아직도 원형의 5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입춘굿은) 탐라국 건국부터 지금까지 이어온 축제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축제라 할 수 있다"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天祭)의 의미와 탐라국의 풍요를 비는 국제(國祭)의 의미가 있는데 아직 두 의미를 완전히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탐라왕을 비롯해 제주 온 백성이 함께했던 국가 규모의 행사가 현재 제주도 전체도 아닌 제주시 주최의 행사로 축소된 데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것이다.

이러한 문제제기는 2018년 입춘굿 복원 20년을 맞아 진행된 세미나 등 현재까지 반복적으로 지적되고 있다.

[다시! 제주문화] (51)새봄 여는 '입춘굿'의 과거·현재·미래는?
또 다른 과제는 과거의 전통을 잇는 동시에 젊은 층의 관심을 유도해 도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현대적 축제로서 자리매김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합뉴스는 2021년 3월 제주지역 초등학교 4∼6학년 학생 550명을 대상으로 제주의 굿과 신화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바 있다.

당시 초등학생들에게 '굿'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85.4%가 굿을 '본 적 없다'고 답했고, 84.0%가 제주 입춘굿과 영등굿 등을 본 적 없다고 답했다.

초등학생 63.9%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굿을 통해 전승되는 제주신화 이야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응답했다.

초등학생뿐만 아니라 제주지역 중·고등학생, MZ세대(1980년대 초∼2010년대 초 출생)에게 물어보더라도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비슷한 반응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다시! 제주문화] (51)새봄 여는 '입춘굿'의 과거·현재·미래는?
무속신앙은 미신이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여전히 강하게 작용하고 있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주의 세시풍속을 익히는 과정이 단절돼 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탐라국 입춘굿 행사를 주관하는 김동현 제주민예총 이사장은 "굿, 무속신앙은 제주 사람들의 삶의 질서와 원리에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이를 놓치면 제주 전통의 한 축이 무너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입춘굿'을 계속해서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젊은 친구들이 행사장에 와서 자연스럽게 굿을 접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

어렵고 낯선 용어인 입춘굿 관련 내용을 가급적 쉬운 언어로 풀어내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입춘굿은 제주시만의 행사가 아닌 전도(全道)적인 것이고, 탐라 천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가장 전통적인 삶의 질서가 녹아있는 행사다.

제도 개선과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이 기사는 '남국의 민속:제주도 세시풍속'(진성기), '탐라국입춘굿놀이'(문무병·㈔제주전통문화연구소), '제주도 입춘굿의 연행원리 연구'(한진오) 등 책자와 논문을 참고해 제주 탐라국입춘굿을 소개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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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