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의 송가


환희여, 아름다운 신들의 불꽃이여
낙원의 딸이여
천상의 것이여, 우리는 몹시 취하여
그대의 성소로 들어가노라.
그대의 마력은 시류가 엄격하게 갈라놓은 것을
다시금 결합시켜 주노라.
모든 인간은
그대의 날개가 머무는 곳에서 형제가 된다.

포옹하라, 만인이여!
이 입맞춤을 온 누리에!
형제들이여, -별의 장막 위에
사랑하는 아버지가 살고 계시노라.

한 친구의 친구가 되는
위대한 일을 이루어낸 사람이여,
사랑스런 여인을 얻은 사람이여,
함께 환호성을 울리자!

(중략)

환희는 영원한 자연 속의
강력한 용수철이도다.
환희, 환희는 크나큰 세계의 시계 속
톱니바퀴를 돌리노라.
환희는 꽃을 봉오리로부터 피워내고
별을 하늘로부터 솟아나게 하나니
환희는 천문학자의 망원경도 볼 수 없는
우주 공간의 천체를 굴리노라.

별들이 장엄한 창공을 날 듯이 기쁘게,
하늘의 화려한 계획에 따라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길을 가라.
승리를 향해 진군하는 영웅처럼 기쁘게!


*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 : 독일 시인,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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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이 31년 걸쳐 작곡한 ‘환희의 송가’
베토벤이 31년 걸쳐 작곡한 실러의 명시

프리드리히 실러의 작품 중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시 ‘환희의 송가’입니다. 청년 시절부터 그를 존경한 베토벤이 31년에 걸쳐 작곡한 합창교향곡이지요. 독일 통일을 기념해 브란덴부르크에서 번스타인이 지휘한 장면을 잊을 수 없습니다. 해마다 송년 음악회 단골 레퍼토리로도 사랑받고 있죠.

실러가 이 시를 쓴 것은 서른다섯 살 때인 1785년이었습니다. 자유와 이상, 단결, 인류의 우애를 찬양하는 내용이지요. 창작 당시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습니다. 독일 남서부 마르바흐의 하급 군의관 아들로 태어난 그는 신학을 전공해 목사가 되려 했지만 영주의 명으로 사관학교에 입학했고, 군의관으로 근무하다 저술 금지령을 피해 만하임으로 도망간 상태지요.

한때 만하임 극장의 전속 작가가 됐으나 그것도 중병으로 사퇴하고 혹독한 시절을 보내던 시기였습니다. 이때 그에게 많은 호의를 베푼 친구 크리스티안 쾨르너의 결혼 축시로 쓴 게 이 시입니다. 쾨르너는 당시 독일 제일의 예술 도시 라이프치히로 그를 초청해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줬지요.

베토벤은 열한 살 위인 실러의 작품을 젊을 때부터 좋아했습니다. 실러의 남성적인 시어가 그의 역동적인 감각과 잘 통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곡을 붙이는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텍스트가 길고 복잡해서 까다롭기 그지없었죠.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일 생각을 한 게 1793년이고 제9 교향곡 ‘합창’을 완성한 게 1824년이었으니 꼬박 31년이 걸렸습니다. “실러의 문학은 음악가들에게 극히 어렵다네. 작곡가는 시인을 뛰어넘어 스스로를 보다 더 높이 고양시켜야 하는데, 실러를 상대로 누가 그것을 해낼 수 있겠는가?”

이 곡은 성악(4명의 독창자와 대합창)을 교향곡에 도입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합니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모험이었지만 베토벤은 감행했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오케스트라와 합창이 완전 일체가 돼 경탄을 자아냈습니다.

곡의 도입부에 바리톤 독창이 나오죠? 이 부분 가사 ‘오 친구들이여! 이런 곡조들이 아닌, 좀 더 즐겁고, 기쁨에 찬 노래를 부르자’는 사실 실러의 원시에 없는 것입니다. 곡의 분위기를 살리려고 베토벤이 일부러 넣었다고 해요. 안타깝게도 실러는 이 곡을 듣지 못하고 1805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곡은 1985년 유럽연합의 찬가가 됐지요. 동유럽 혁명의 테마곡으로도 쓰였습니다. 칠레 시위대는 피노체트의 군사 독재에 반대하며 이 곡을 불렀고, 중국 학생들은 천안문 광장에서 이 곡을 틀었지요. 시인과 작곡가는 떠났지만, 명곡의 향기는 이렇게 영원합니다.

■ 고두현 시인·한국경제 논설위원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