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 3월부터 기준금리를 숨 가쁘게 올려왔던 미국 중앙은행(Fed)이 계묘년을 목전에 두고 피벗(pivot), 즉 방향 전환을 단행해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올해 나타날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국채 금리와 달러 가치가 떨어지는 가운데 한국도 원·달러 환율이 급락하는 등 피벗 영향이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직전까지 강한 매파 성향으로 일관한 Fed가 피벗을 단행한 것은 첫 금리 인상 때부터 안고 있던 태생적 문제다. 2021년 4월 소비자물가(CPI) 상승률이 ‘쇼크’라고 부를 정도로 높게 나왔는데도 ‘일시적’이라고 오판한 Fed가 뒤늦게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볼커 모멘텀’으로 대처해 왔다.

Fed, 올해는 금리를 내릴 수 있나?

그래픽=이정희 기자
그래픽=이정희 기자
볼커 모멘텀은 인플레가 잡히는 가닥만 보이면 그 명분이 급속히 약화된다. 미국의 CPI 상승률이 작년 6월 9.1%를 정점으로 안정되기 시작해 같은 해 12월에는 6.5%로 크게 둔화됐다. Fed의 인플레 목표치보다 여전히 높은 수준이지만 통화정책의 시차가 9개월에서 1년인 점을 감안하면 피벗을 추진할 때가 됐기 때문이다.

경기침체 우려가 확산하는 것도 피벗 단행의 또 다른 요인이다. Fed가 경기예측기법으로 신뢰하는 장단기 금리 역전은 그 격차가 80bp(1bp=0.01%포인트, 2년물과 10년물) 이상 벌어졌다. 1970년 이후 미국 경기는 최근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면 예외 없이 침체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작년 12월 전망에서 Fed가 올해 성장률을 0.5%로 크게 낮춰 잡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책적으로도 Fed가 인플레만을 잡기 위해 더 이상 주력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외적으로 강달러 유도를 통한 인플레 수출책은 다른 국가들로부터 강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중간선거 이후 하원에서 공화당이 다수당을 차지함에 따라 미국 재무부의 바이백(buy back)을 통한 유동성 공급도 제동이 걸리고 있다.

1년 가깝게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도 지금의 전황으로 보면 올해는 평화협정, 러시아 패전 등 어떤 형태로든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유럽 경제는 발목을 잡던 지정학적 위험과 에너지 위기 충격에서 벗어나면서 유로화와 파운드화 가치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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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벗은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것만으로 알려져 있다. 작년 12월 Fed 회의에서 나타난 수정된 점도표(최고금리 5.1%)를 토대로 올해 금리 인상 경로를 추정해 보면 1월과 3월 회의에서 0.25%포인트씩 추가적으로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인플레가 다시 불거져 최고금리가 상향 조정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서다.

하지만 파월 의장을 비롯한 Fed 인사들의 어록을 감안하면 당장 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쉬운 문제는 아니다. 날로 악화하는 미국 국채시장의 신용경색을 푸는 직접적인 방안도 못 된다. 이 때문에 양적긴축(QT)을 단계적으로 줄이는 방안이 피벗의 차선책으로 급부상할 수 있다.

연초 열린 미국경제학회에서 논의된 인플레 타기팅선을 상향 조정하면 금리 인상과 QT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 제3의 피벗 대안이 될 수 있다. Fed가 인플레 잡기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상황에서 인플레 타기팅선을 현재 2%에서 3%로 올리면 테일러 준칙에 따른 적정 금리를 같은 폭으로 낮추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Fed의 통화정책, 세 가지 점을 주목해야 한다.

올해 Fed의 통화정책을 읽을 때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은 금리 결정권을 가진 FOMC 보드 멤버가 대거 교체되는 점이다. 지난해 금리가 말이 뛰는 식으로 인상된 데는 FOMC 보드 멤버들이 강한 매파 성향 위원으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최고금리를 7%까지 올려야 한다는 제임스 불러드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 자이언트스텝(한 번에 금리를 0.75%포인트 인상)을 주도한 로레타 메스트 클리블랜드 연은 총재와 에스터 조지 캔자스시티 연은 총재 등이 대표적이다.

이달 말에는 이들이 빠지는 대신 오스턴 굴스비 시카고 연은 총재,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은 총재,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 등과 같은 비둘기파 성향 인사들이 새롭게 들어온다. Fed 내부 인사 가운데 “최고금리가 4.5% 이상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레이얼 브레이너드 통화정책담당 부의장의 입김이 더 세지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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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 금리정책의 잣대인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상승률이 언제 최고금리와 교차하느냐도 주목해야 한다. 작년 12월 FOMC 회의 당시 점도표에서 나타난 최고금리는 5.1%인 반면 같은 해 11월 PCE 물가상승률은 5.6%였다. 최고금리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PCE 물가상승률 둔화 속도를 감안할 때 올해 2분기에는 교차될 가능성이 크다.

PCE 물가상승률과 최고금리 간 교차는 임금과 물가 간 악순환 고리(wage-price spiral)의 차단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을 제외하고는 PCE 물가를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 항목의 물가가 하락세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대표적 후행지표인 집값도 작년 하반기부터 하락세로 돌아서 올해부터는 각종 인플레 지표에 본격적으로 반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임금과 물가 간 악순환 고리는 기대 인플레를 바탕으로 임금이 오르면 기업이 제품 가격에 전가하고 이에 근로자들이 임금 인상을 다시 요구하면서 물가 상승이 본격화한다는 이론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도 소비자물가가 1%포인트 오르면 임금상승률이 네 분기 시차를 두고 0.3∼0.4%포인트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 바이든 미 정부 들어 빅테크 기업에 대한 반독점 규제를 강화한 것도 이 같은 요인 때문이다.

1980년대 이후 인플레를 잡기 위해 볼커 모멘텀을 추진한 이후 Fed의 금리정책은 기준금리를 올리면 그 수준을 오랫동안 유지하는 ‘고 스톱 홀드(go-stop-hold)’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벌써부터 8월 잭슨홀 미팅과 9월 Fed 회의에 관심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경제가 물가가 잡히는 상황에서 성장률이 0%대로 떨어지는 ‘슬로세션(slowcession)’에 빠지면 금리를 내리는 방안이 거론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 Fed의 통화정책과 관련해 주목해봐야 할 것은 ‘그린스펀 수수께끼’, 즉 기준금리 인상폭만큼 시장금리가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다. 2004년 금리 인상 당시에는 중국의 미국 국채 매입으로 이 현상이 나타났으나 작년 9월 이후에는 Fed 자체 요인에 기인하고 있어 문제가 더 심각하다.

Fed는 제1선 목표인 인플레를 ‘일시적’이라고 오판해 선제 대응에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고용과 경기 예측이 크게 빗나가 시장 참여자로부터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다. 작년 12월 FOMC 회의 이후 Fed와 파월 의장은 피벗 추진에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여전히 기대가 살아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플레 잡기 위한 역환율 전쟁…올해도 지속되나?

통화정책, 즉 마스(mars) 요인 면에서 Fed가 인플레를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중단하거나 금리 인하까지 추진한다면 올해 달러 가치는 ‘킹(king) 달러’ ‘갓(god) 달러’라는 용어까지 나올 정도로 강세를 보인 작년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엇보다 인플레를 잡기 위한 Fed의 금리 인상과 미국 재무부의 강달러 유도 정책 명분이 약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펀더멘털 면에서 머큐리(mecury) 요인도 올해 미국 경제가 슬로세션에 빠진다면 오히려 달러 약세를 통해 수출을 증대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감안하면 이 요구는 의외로 강할 수 있다. 반사적인 면에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종료될 경우 달러 가치가 큰 폭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달러인덱스 구성 통화 중 유럽통화 비중이 70%를 넘기 때문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올해 2분기가 주목된다. 영수 체제 첫해를 맞아 시진핑 중국 정부는 수입물가 상승에 따른 인민들의 경제 고통을 줄이기 위해 위안화 평가절상을 본격적으로 유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도 미국이 달러 강세를 통해 인플레를 계속 수출할 경우 위안화 평가절상으로 맞서 환율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여지를 늘 남겨놓고 있는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도 4월 중순에 발표된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BOJ) 총재가 퇴임하는 올해 4월 이후 마이너스 금리정책과 아베노믹스를 포기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차기 BOJ 총재로 거론되는 후보들이 구로다 총재와 손발을 맞춰온 점을 감안하면 아베노믹스의 골격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미국과의 금리차 확대로 엔화 가치가 적정선(일명 구로다 라인)인 125엔보다 과도하게 떨어진 것에 따른 역자산 효과를 줄이기 위해 마이너스 금리정책은 수정할 가능성이 있다.

대외적인 여건만 따진다면 올해 원·달러 환율은 1500원 이상으로 급등하기보다 1100원 내외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I)에 따르면 올해 원·달러 환율은 1130∼1150원으로 지금 수준보다 한 단계 더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작년 10월 초 기록한 1448원에 비해서는 300원 이상 더 떨어져 국내 기업들이 당혹스러워하는 수준이다.

올해 원·달러 환율을 예상할 때 주목해야 할 변수는 국내 채권시장에 외국인 자금이 얼마나 들어올 것인가 하는 점이다. 지난해 예고된 세계국채지수(WGBI)상 선진국 편입은 이르면 올해 3월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도이체방크에 따르면 한국이 WGBI의 선진국에 편입될 경우 국내 채권시장에 외국인 자금이 90조원 정도 들어올 것으로 추정했다. 이 경우 원·달러 환율은 1100원 내외 선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작년 초 전망치에 비해 크게 오른 원·달러 환율로 곤욕을 치른 기업과 달러 투자자들은 올해 들어서도 그 어느 해보다 외화 운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아직도 막연하게 달러 가치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시급하다. 원·달러 환율이 1270원대까지 떨어진 상황에서 올해 2분기 이후 1500원 이상으로 재차 올라갈 것으로 보는 것은 이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시각이다.

작년 못지않게 올해도 변동성이 크게 확대될 것으로 예상되는 때는 ‘평균환율의 함정’에 걸리지 말아야 한다. 사업계획 등에 주로 쓰이는 평균환율은 한 해 거래일 기준으로 200일 이상 되는 원·달러 환율이 평균치에 집중될 때 그 의미가 크다. 코로나 사태 이후처럼 거래 수준별로 흐트러져 있을 때는 평균환율을 토대로 한 외화 운용은 금융위기 당시 키코(KIKO) 사태처럼 크게 낭패를 볼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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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불확실성 시대에 우리처럼 비기축 통화국에 속한 기업과 달러 투자자들의 외화 운용은 가능한 한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차선책이다. 최선책은 원·달러 환율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지만 이를 토대로 한 외화 운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가장 쉽게 가져갈 수 있는 보수적인 외화 운용 방안은 수출 환율은 낮게, 수입 환율은 높게 설정하는 전략이다. 그 중간에서 원·달러 환율이 마무리될 경우 수출과 수입에서 모두 환차익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