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CES서 마주친 美 소프트파워
한국경제신문은 매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를 보도하기 위해 대규모 취재단을 파견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CES에서 한 해의 IT(정보기술)·가전 쪽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향후 몇 년을 좌우할 혁신이 어떤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한국경제TV와 한경닷컴을 포함해 27명의 기자가 현장을 누볐다.

CES 2023에선 한국 기업의 약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우선 참가 기업이 550개로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지난해보다 10% 이상 늘었고 5년 전에 비해선 160%가량 증가했다. 특히 올해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면서 중국 기업들이 빠진 틈을 한국의 스타트업과 지방자치단체 등이 상당수 메웠다. CES 혁신상도 많이 받았다. 499건의 혁신상 제품과 기술 중 28.3%인 141건이 한국 기업 몫이었다.

하지만 한국이 양에 비해 질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이기도 했다. 글로벌 혁신지수가 세계 26위에 그친 것으로 발표됐기 때문이다.

올해 CES는 여전히 미국의 힘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글로벌 혁신지수 1위는 미국과 핀란드가 공동으로 차지했다. ‘핀란드가 왜’라는 질문이 생긴다. 미국이 단독 1위를 차지하면 가뜩이나 거세게 불고 있는 자국 중심주의가 세계 최대 IT·가전 전시회라는 명성을 깎아내릴 수 있다는 것을 우려해서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미국 외 기업에 혁신상을 많이 주는 것도 글로벌 행사라는 것을 부각하기 위한 판단일 수 있다.

행사장에선 삼성, LG, SK, 파나소닉, 보쉬 등 미국 외 기업에도 관심이 쏠렸지만,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빅테크에 관심이 모아졌다. 미국 빅테크들은 하나같이 자율주행을 비롯한 자율시스템 소프트웨어를 들고나왔다. 자율시스템이 빅테크들이 격돌할 전장이란 점이 분명해졌다. 부스를 꾸미는 데 공들이지 않아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한 수많은 미국 스타트도 연결, 원격, 앱 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 소프트웨어를 내세웠다.

현장에선 미국 사회를 움직이는 소프트파워도 느껴졌다. 4일까지 한산하던 모노레일 역엔 공식 개막일인 5일부터 안전 요원이 대거 배치됐다. 표를 사는 데서부터 에스컬레이터 초입, 모노레일을 타는 승강장까지 인원수를 통제했다. 열차 운행 간격도 9분에서 5분으로 단축해 더 많은 열차를 배치했다.

전시장 입구에서도 사람들이 몰리지 않도록 긴 줄을 만들었으며 입구와 출구를 철저히 분리했다. 대기업 부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불만을 토로하는 현지인이나 외국인은 보지 못했다. 호텔에서 나와 전시장에 들어가는 데 전날보다 두 시간이나 더 걸렸지만 모두 당연하다고 느끼는 듯했다. CES 2023 주최 측과 라스베이거스시가 이렇게 신경을 쓴 행사에 나흘간 다녀간 인원은 11만5000명이었다.

이태원 참사 때와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다. 지난해 10월 29일 핼러윈 행사를 위해 이태원 중심가에 하룻밤 새 모여든 인원이 10만 명이었다. 경찰의 통제는 아예 없었다. 심지어 경찰을 관장하는 장관이 “경찰 배치로 해결됐을 문제가 아니다”라는 발언을 내뱉은 나라다. 그래도 한국은 발전하고 있는 나라다. 철저한 조사를 거치면 제2의 이태원 참사를 예방할 수 있다. 하드파워보다 소프트파워가 조금 느리게 개선될 뿐이다. 내년에도 많은 한국 기업이 CES에 참가할 것이고 한국경제신문은 대규모 취재단을 꾸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