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원자로’ 수출을 놓고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과 미국 원전업체 웨스팅하우스가 상업적 타협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수원이 해외에서 원전을 수주하면 웨스팅하우스에 수익의 일정 비율을 지급하는 등의 방안이다.

8일 발전업계에 따르면 한·미 양측은 웨스팅하우스의 소송 철회를 전제조건으로 이 같은 타협안을 논의하고 있다.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맺은 한국형 원자로 ‘APR1400’ 관련 로열티 계약을 명확히 하는 방안도 논의 대상에 올랐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해 10월 자사 측 원자로 디자인을 기반으로 APR1400이 개발됐다고 주장하며 현지 법원에 APR1400 수출금지 소송을 냈다. “한수원이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선 미국 원자력법상 본래 기술을 가진 웨스팅하우스와 미국 에너지부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게 웨스팅하우스 측 주장이다. 웨스팅하우스는 이와 별도로 한국 측에 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한수원은 미국 법원에 웨스팅하우스 소송 각하 및 중재 강제 명령을 신청하며 맞섰다. 미국 원자력법 위반을 근거로 제소할 수 있는 권리는 연방정부만 보유하고 있어 웨스팅하우스는 청구권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이와 별도로 웨스팅하우스와의 소송전이 장기화하는 것을 막기 위한 타협안도 논의하는 ‘투 트랙’ 전략을 펴고 있다.

웨스팅하우스와의 갈등은 2030년 원전 10기 수출을 목표로 내건 윤석열 정부의 딜레마다. 원전 수주전에서 한·미 간 협력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직접 수주를 따내면 시공부터 주요 기기 제작까지 국내 기업에 하청을 줄 수 있다. 웨스팅하우스가 수주하는 경우도 차선책이 될 수 있다. 미국은 원전 시공 능력이 떨어져 한국 기업들이 주요 공정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을 수 있어서다.

문제는 웨스팅하우스의 주장을 모두 수용하면 앞으로도 계속 원전 논의에서 미국에 끌려갈 수 있다는 점이다. 원전업계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와의 협상은 한국 원전 산업의 명운을 가르는 중요한 일”이라며 “상호주의 정신에 입각해 국익 훼손이 없는 절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