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붕괴 전후 러 최고회의 의장 하스불라토프…체첸 반군 무력 진압 반대
'옐친 숙적' 前 러 의회 마지막 의장 사망…푸틴과 대립하기도
러시아 최고회의(의회) 마지막 의장을 지낸 루슬란 하스불라토프가 사망했다고 타스 통신 등이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남부 체첸공화국 출신의 하스불라토프는 이날 80세의 나이로 모스크바 외곽 자신의 저택에서 숨졌다.

그는 5일 체첸 수도 그로즈니로 이송돼 그로즈니 인근의 고향마을에 안장될 예정이다.

하스불라토프는 소련 해체 직전인 1991년 10월부터 소련 내 러시아 공화국 의회에 해당하는 최고회의 의장이 돼 1993년 10월까지 소련에서 독립한 신생 러시아 최고회의 의장을 지냈다.

소련 붕괴와 신생 러시아 출현 과정에서 보리스 옐친 러시아 대통령과 충돌했던 그는 2000년대 집권한 옐친의 후임인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체첸 분리주의 반군 무력 진압 정책에 반대해 크렘린궁과 대립하기도 했다.

1942년 그로즈니 인근에서 태어난 하스불라토프는 모스크바국립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경제학자로 소련 말기에는 옐친의 가까운 동맹자였다.

1990~91년 소련 내 러시아 최고회의 의장이던 옐친 밑에서 제1부의장을 지냈고, 옐친이 신설된 대통령직을 맡은 뒤 최고회의 의장이 됐다.

두 사람은 1991년 8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지도자의 개혁정책에 반대한 보수파의 쿠데타에 함께 저항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1년 12월 소련 붕괴 후 러시아 의회 수장인 하스불라토프와 행정부 수장인 옐친의 갈등이 본격화됐다.

두 지도자는 사회주의 체제 청산과 시장 개혁 속도, 의회와 대통령의 권한 분배 문제 등을 두고 충돌하며 정치적 라이벌 관계로 들어갔다.

이들의 갈등은 하스불라토프가 이끌던 최고회의가 옐친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고, 이에 옐친이 1993년 10월 군대를 동원해 최고회의 건물인 '벨리 돔'(백악관)에 탱크로 포격을 가하면서 농성을 벌이던 의원들을 무력 해산시킨 사건으로 절정에 달했다.

이 사건 후 하스불라토프는 대중 소요 조직 혐의로 체포돼 투옥됐으나 1994년 사면으로 풀려났다.

푸틴 대통령과의 충돌은 2000년대 중반에 불거졌다.

하스불라토프는 2003년 러시아 연방으로부터 분리·독립을 추진하던 체첸공화국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가 친크렘린계 지도자를 체첸 수장으로 세워 분리주의자들의 독립 운동을 잠재우려던 크렘린궁과 마찰을 빚었다.

그는 또 무장 독립 투쟁을 벌이던 체첸 반군을 무력 진압하려던 푸틴 대통령의 정책에 반대하며 반군과의 협상을 주장하기도 했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푸틴 정권 하의 민주주의 후퇴와 인권탄압 문제 등에 대처할 것을 호소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