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제 새벽 내년도 예산안과 예산 부수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 국회의 고질적인 구태들이 고스란히 재연됐다. 헌법과 국회법에 규정된 처리 시한인 12월 2일을 22일이나 넘긴 것은 물론 막판 지역구 ‘쪽지 예산’이 대거 끼어들었고, ‘깜깜이’ 심사 관행도 되풀이됐다. 법안은 제대로 심의되지 않은 채 여야 거래 대상이 되면서 졸속 처리됐다.

여야는 정부 예산안에서 4조2000억원 감액하고 3조9000억원 증액했는데, 증액분 가운데 지역 민원성 예산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 여야 지도부, 중진, 초선 의원 가리지 않고 예산안이 통과되자마자 지역구에 수억~수십억원을 챙겼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홍보 자료를 뿌리기 바쁘다. 정부 예산안에 이미 반영한 민원성 예산도 모자라 혈세를 마구 써도 되는 쌈짓돈처럼 여기고 있다. 쟁점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한 여야는 지역구 예산 나눠 먹기만큼은 한통속이다. 쪽지 예산은 사업 타당성 검토를 제대로 거치기 힘들어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이라는 예산 편성 원칙을 훼손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으나 하나도 변한 게 없다.

올해는 밀실 심사 관행이 유독 심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국회 예결특위는 지난달 30일까지 증액은 손도 못 댔고, 감액 심사도 마치지 못한 채 활동을 끝낸 뒤 속기록도 없어 밀실 답합 수단으로 여겨지는 ‘소(小)소위’로 예산안을 넘겼다. 의원들은 증·감액 내용도 모른 채 표결에 임했다. 오죽하면 한 예결위 의원조차 “심사 상황을 알 수 없었고, 수정안이 도깨비처럼 등장해 국회를 모독했다”고 토로했겠나.

법안도 졸속 처리하긴 마찬가지였다. 예산 부수법안들을 다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는 소위원장을 어느 당에서 맡느냐를 놓고 6개월 가까이 입씨름하느라 법인세율 인하 법안은 상임위 심사도 건너뛴 채 여야 협의체로 넘어가 버렸다. 반도체 세액공제 법안도 합의점을 찾지 못하다가 시한에 쫓겨 일괄타결 대상이 되면서 여당안(20%)도, 야당안(10%)도 아닌 정부안(8%)으로 후퇴해버렸다. 모두 국회의 대(對)국민 배임행위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