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기업 감사인을 때마다 강제로 정해주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대폭 완화한다. 주된 갈등 요인으로 꼽혀온 감사인 자유선임기간을 기존 6년에서 9년으로 늘리기로 했다. 지정감사 비율도 기존 52%에서 40%대로 낮춘다.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도입 이후 기업들의 감사 비용과 시간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는 지적을 반영한 조치다.

기업 부담 키운 지정감사제, 결국 완화
18일 금융당국과 회계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르면 이달 말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 변경안을 발표한다. 한 회사가 9년 이상 동일 감사인을 선임한 경우 이후 3년 동안 금융당국이 새 감사인을 지정(‘9+3’)하도록 한 게 골자다. 2019년 말 새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신외감법) 도입에 따른 제도 변경 후 지금까지는 ‘6+3(자유선임기간 6년, 지정선임기간 3년)’이었다.

이 같은 제도 완화는 금융당국이 각계 의견을 모아 반영한 결과다. 기업들은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를 놓고 세계 어디에도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라며 제도 폐지를 주장해왔다. 잦은 감사인 교체로 인한 감사 품질 하락과 관련 비용 급증에 따른 부담을 근거로 내세웠다.

회계업계의 입장은 딴판이다. ‘감사 독립성 강화’라는 제도 도입 취지를 살리기 위해선 기존 ‘6+3’ 제도를 그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맞서왔다.

기업들 "감사인 지정제 완화 환영" 회계업계 "투명성 확보 어려워져"
"강제로 감사인 바꾸며 치렀던 비용·시간 부담 다소 덜었다"

정부가 기업 감사인을 강제로 정해주는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도입된 후 기업들은 부글부글 속을 끓여왔다. 때마다 강제로 감사인을 바꾸는 과정에서 들이는 돈과 시간은 확 늘어났지만, 정작 감사 품질은 떨어진 탓이다.

2019년 말 새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신외감법)에 따른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본격 도입된 이후 국내 상장사 및 대형 비장상사들의 감사 비용은 대폭 상승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의 ‘상장법인 외부 감사 보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상장사 한 곳당 평균 감사보수는 2억4800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제도 도입 전인 2017년 1억2500만원에서 약 두 배로 증가한 수치다. 연평균 증가율은 18.69%에 달한다.

상장사 한 곳당 평균 감사 시간도 같은 기간 1700시간에서 2447시간으로 43% 급증했다. 시간당 감사보수는 7만4000원에서 10만1000원으로 뛰었다.

업계에선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뿐만 아니라 직권 지정 등을 통한 감사인 선임 등이 감사 비용 상승을 이끈 것으로 보고 있다.

직권 지정은 △상장예정 △감리조치 △감사인 미선임 △재무기준 요건(부채비율 200% 초과 등) 해당 △내부회계관리제도 미비 △횡령·배임 발생 기업 등을 대상으로 금융당국이 감사인을 선정하는 제도다. 신외감법 도입 이전인 2017년 상장사들의 지정 감사 비율은 8.4%였지만 최근 52%까지 불어났다.

상장기업 재무·회계 담당자는 “일반 감사 비용보다 지정 감사와 직권 지정 감사 비용이 10%에서 50% 이상 더 든다”며 “지정 감사 비율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의 부담도 훨씬 커졌다”고 말했다.

기업들과 회계법인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기업들은 일단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한 상장사 임원은 “감사인 자유 선임 기간이 늘어나면 관련 비용과 시간을 더 아낄 수 있게 될 것”이라며 “중장기적으로는 감사인 지정제 자체를 폐지하고 기업의 자율적 선택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계업계는 아쉽다는 반응이다. 회계법인 관계자는 “감사 독립성 확보를 위해 도입된 주기적 감사인 지정제가 제대로 정착되기도 전에 ‘땜질 처방’에 나선 것은 성급한 조치”라며 “회계 투명성도 확보하지 못하면서 기업들의 불만 역시 여전히 남겨둔 찜찜한 상태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훈 기자 lee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