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살 만한 동네 아냐"…최악 입지 극복한 日 마을의 비결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지난 8월3일 일본에서 가장 박력있는 축제 아오모리 네부타 마쓰리에 '대한항공 네부타'가 등장했다. 거대한 축제차량인 네부타는 네부타 마쓰리의 상징이다. 한 대의 크기가 높이 5m, 폭 9m, 무게 4t에 달한다.
"사람이 살 만한 동네 아냐"…최악 입지 극복한 日 마을의 비결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이색적인 지역 축제에 머무르던 네부타 마쓰리는 1970년대 일본 대기업들이 스폰서로 나서면서 전국 규모의 홍보 전쟁터가 됐다. 일본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축제로 성장한 덕분이다. 매년 8월 초 엿새간 열리는 축제 기간에 아오모리시 인구의 10배에 달하는 285만 명이 도시를 찾는다.
"사람이 살 만한 동네 아냐"…최악 입지 극복한 日 마을의 비결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네부타 마쓰리는 2018년 기준 382억엔(약 3687억원)을 벌어들여 단 6일 만에 아오모리현 국내총생산(GDP)의 1%를 창출했다. 일본 축제 가운데 경제 효과가 압도적인 1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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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축제에 대한항공의 네부타가 뜬 것이다. 아오모리현청이 네부타를 직접 제작했다. 아오모리현의 파격적인 환대에는 이유가 있다. 코로나19 이후 끊어진 인천~아오모리 직항편을 다시 운항해 달라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1995년 아오모리공항에 처음 취항한 국제선 항공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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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무라 신고 아오모리 지사는 "아오모리에 있어서 대한항공과 인천공항은 세계로 열린 창"이라며 "(직항편을 통해) 아오모리는 세계와 이어지는 다양한 연결고리를 만들어 왔다"고 말했다.

아오모리현이 국제선을 재개를 위해 애쓰는 것은 단순히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모든 일본 지방자치단체의 고민인 인구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아오모리현 인구는 1983년 152만9269만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고 있다. 2019년에는 124만6291명까지 줄었다. 2045년에는 82만4000명으로 1983년의 반토막이 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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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인구는 급격히 늘어나는데 생산연령 인구와 어린이 인구는 급감하는 전형적인 인구 절벽을 경험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6년 31만명이 넘었던 아오모리시의 인구도 27만명까지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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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문제에 있어 아오모리는 일본 47개 광역 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불리한 입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혼슈 최북단의 현이어서 접근성이 가장 나쁜 지역 가운데 하나다. 아름다운 대자연은 생활에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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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기예보 제공회사 아큐웨더에 따르면 아오모리시의 연간 강설량은 8m로 세계 1위다. 아오모리의 뒷산인 하코다산은 겨울철 수빙의 아름다움과 온천의 수질 덕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반면 역사적으로는 '세계 최대 조난 지역'이라는 오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1902년 일본군 199명이 동계 훈련 도중 눈속에서 길을 잃고 동사한 장소다.
"사람이 살 만한 동네 아냐"…최악 입지 극복한 日 마을의 비결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인구가 30만명이나 되는 도시 치고 이렇게 엄혹한 환경에 자리잡은 도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는 평가다. 아오모리현청 관계자는 "원래는 사람이 살 만한 동네가 아니다"라고까지 얘기했다.

그렇다고 아오모리현이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이주자를 서로 유치하려는 인구쟁탈전 대신 일본의 지자체들이 힘을 쏟는 사업이 '관계 인구'를 늘리는 것이다. 관계인구는 2016년 경 잡지 편집자들이 쓰기 시작한 신조어다.

관계인구란 관광 목적으로 단기간 지역을 방문하는 '교류인구'와 지역에 거주하는 '정주인구'와 달리 한 지역을 여러 차례 방문하면서 반쯤은 주민 같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관광객 이상, 거주자 미만'인 인구라고 정의할 수 있다. 관광객이 단발성으로 찾아와서 숙박비와 식사, 기념품 구입에 돈을 떨어뜨리고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계다.

처음엔 일종의 현상으로 주목받았던 관계인구는 2018년 일본 정부의 정식 과제로 선정된다. 일본의 지자체들이 예산만 태워가면서 불필요한 인구쟁탈전을 벌이고 있다는 비판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 만한 동네 아냐"…최악 입지 극복한 日 마을의 비결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일본 총무성은 2018년 정식 보고서를 통해 "관계인구를 정착시키는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며 전국적으로 시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제2차 종합전략에 "관계인구를 늘리는데 전념하는 지자체를 1000곳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일본에는 후루사토(ふるさと·고향이라는 뜻)납세라는 제도가 있다. 주민등록지 대신 자신의 고향이나 따로 선택한 지역에 주민세 일부를 내는 납세방식이다. 관계인구를 늘리면 지자체의 직접적인 세수에도 도움이 된다.

관계인구를 늘리려면 먼저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아무리 물 맑고 산 좋은 곳이라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면 관계인구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여행 삼아 한번 왔다 가고 끝나는게 아니라 반복적으로 자신의 지역을 찾게 만드는 매력 포인트를 만들어야 한다.
"사람이 살 만한 동네 아냐"…최악 입지 극복한 日 마을의 비결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혼슈 최북단 아오모리에 있어 네부타 마쓰리는 관계인구를 늘릴 수 있는 '킬러 콘텐츠'인 것이다. 네부타 마쓰리는 일본인들 사이에서의 인지도는 1위다. 반면 해외 인지도는 같은 동북지방인 아키타 간토마쓰리와 모리오카 산사마쓰리에 뒤처진다.

다른 지역에 비해 불리한 입지 때문에 내·외국인 가릴 것 없이 관계인구를 늘려야 하는 아오모리현. 외국인들 사이에서 아오모리의 인지도를 높이고 기꺼이 관계인구가 되게끔 만드는 신의 한 수가 대한항공 네부타인 것이다.
"사람이 살 만한 동네 아냐"…최악 입지 극복한 日 마을의 비결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미무라 아오모리 지사는 "인천공항을 경유해 중국과 홍콩 등 아시아 여러나라 사람들이 아오모리를 방문하게 됐다"며 "네부타 마쓰리를 통해 관계인구도 엄청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아오모리=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