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시스템반도체 모빌리티 로봇 등 첨단 산업 분야의 유망 스타트업 1000개를 육성하기로 했다. 민관 공동으로 5년간 2조원을 투입해 독보적 기술을 지닌 초격차 스타트업을 키운다는 목표다. 벤처 시장에 민간투자를 끌어들여 연간 8조원대의 ‘민간 벤처모펀드’도 조성하기로 했다.

정부와 기업, 가계 등 경제 주체가 모두 힘들고 엄중한 시기지만,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미래의 싹을 틔우는 일은 잠시도 멈출 수 없다는 점에서 기대를 걸어본다. 복합위기 속에 우량 대기업마저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현실을 보면 스타트업이 직면한 ‘투자 보릿고개’가 얼마나 절망적일지 짐작할 수 있다. 2021년 3분기 2조913억원에 달했던 국내 벤처투자 규모는 올해 3분기 1조2525억원으로 급감했다.

벤처·스타트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할 잠재 후보다. 우버 에어비앤비 바이트댄스(틱톡)도 스타트업으로 출발했다. 고용 창출 효과도 크다. 국내 3만4362개 벤처·스타트업의 올해 6월 말 고용 인원은 76만여 명으로 1년 전에 비해 9.7% 늘었다. 전체 기업 고용증가율(3.3%)의 약 세 배다.

다만 자금 지원도 중요하지만, 스타트업의 씨를 말리는 규제를 철폐해야 제대로 된 효과를 낼 수 있다. 승차 공유, 원격의료, 공유숙박 등 한국에서는 불가능한 사업이 많다. 아산나눔재단의 스타트업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100대 유니콘 기업 중 55개는 한국에서 ‘온전히’ 사업을 할 수 없다. 한국의 유니콘 기업 수가 15개로 미국(628개) 중국(174개) 인도(68개)보다 크게 적은 이유다. 업계가 요구해온 비상장 벤처기업의 복수의결권 도입은 국회 법사위에 1년 넘게 계류돼 있다. 대기업의 벤처캐피털(CVC)이 허용됐지만, 까다로운 설립 기준과 해외 투자 및 차입 규모 제한에 발이 묶여 있다. 이래선 민간이 주도하는 창업 생태계로 탈바꿈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