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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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의 지난 5년간 연평균 매출액 성장률은 32.8%에 달했다. 영업이익 성장률도 37.7%로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급격한 성장에 따른 내실을 갖추었다는 평가는 많지 않다. '문어발' 확장으로 덩치는 불렸지만, 조직 내에서는 끊임 없이 경고음이 터져 나왔다.

카카오 안팎에선 이번 데이터센터 화재 피해가 이토록 컸던 것에 대해서도 '자업자득'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투자를 해야 할 곳에 제대로 투자하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된 '구멍'들이 이번에 한꺼번에 드러났다는 얘기다.

◆예상보다 더 허술했던 '국민 채팅방'

인프라 투자도, 비상시 조치도 미흡한 이번 사례가 대표적이다. 1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까지 카카오의 서비스는 주요 13개 중 4개만 정상화됐다. 카카오페이(결제서비스), 카카오게임즈, 카카오웹툰, 지그재그(쇼핑몰) 등이다. 이들 서비스보다 이용자가 훨씬 많은 카카오톡은 이미지·동영상 전송 기능 등이 속도 저하를 겪고 있다. 카카오맵(지도), 카카오T(택시호출), 멜론(오디오 스트리밍) 등도 일부 기능을 복구하고 있다. 이들 서비스가 늦게나마 회복 중인 것은 자체 조치가 탁월했던 까닭이 아니다. 데이터센터가 약 95% 수준으로 복구되면서 서버가 재가동 된 영향이다.

반면 같은 시점 네이버는 데이터센터 화재로 영향 받은 주요 서비스 4개(포털, 쇼핑, 시리즈온, 파파고) 중 포털 검색을 제외한 3개 서비스가 완전 복구됐다. 검색은 이용자들의 일상적인 활용엔 별 지장이 없는 정도다.

네이버는 2013년 강원 춘천에 제1데이터센터를 세웠다. 대규모 IT 서비스의 안정성을 위해선 자체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다. 여기다 추가로 세종시에 제2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 양 프로젝트에 들이는 비용이 총 1조원을 웃돌 전망이다. 카카오는 2020년에야 4000억원 규모의 자체 데이터센터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정보보호 투자 규모도 딴판이다. 정보 보호란 IT 기업이 정보 데이터를 보호하고 보안을 유지해 서비스 안정성을 보장하는 일이다. 올해 정보보호 공시에 따르면 네이버는 정보보호에 350억원을, 전담인력은 총 107명을 뒀다. 반면 카카오는 네이버의 절반 이하인 약 140억원을 투입했다. 전담인력은 61명에 그쳤다.

◆2020년에야 데이터센터 '계획'

특히 카카오의 재해시 복구 계획(DR·Disaster Recovery)은 이번 화재를 계기로 '무용지물'이었음이 드러났다. 아마존, 구글 등 빅테크가 최소 3개 이상의 데이터센터가 서로 연결돼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며 백업을 하는 '가용영역(AZ)'을 가동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아마존은 서울에 가용영역을 4개 갖추고 서로 연동시켜 놨다. 이 데이터센터들은 각각 서로 다른 장소에서 물리적으로 분리돼 있고 전력 공급망 등도 따로 사용한다. 같은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여러 개 짓는 이유다.

IT업체들은 데이터센터에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즉시 투입되는 인력 구성, 전력공급이 끊어질 때를 대비한 비상 전력 확보 대책, 재해복구 소요 시간, 해킹 방지 대책, 백업 및 복원 절차 등의 세부 계획을 수립해놓는 것이다. 서버 전체가 마비되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한 훈련도 반복한다. 구글의 경우 1년에 2회 이상 복구 훈련을 하고, 마이크로소프트도 연 1회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테러 위험 등을 고려해 정확한 위치도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등 보안도 철저하다.

◆"성장단계 걸맞는 경영능력 부재"

카카오의 계열사 수는 134여개에 이른다. 2013년엔 16개에 불과했던 계열사 수가 이후 8년간 해마다 13.5개씩 늘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16년 로엔엔터테인먼트 인수 이후 끊임없는 M&A로 3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카카오페이는 보험 스타트업과 증권사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카카오게임즈는 최근 2년 사이에만 총 11개 회사를 인수하거나 전략적 지분투자를 단행했다.

그러나 돈만 내면 결정할 수 있는 인수과정과 달리 인수 후 통합(PMI)에는 소홀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카카오 계열사에 최근 합류한 한 임원은 "각 계열사가 스스로 M&A 여부를 손쉽게 결정하는 것을 보고 다소 놀랐다"며 "좋게 보면 자율성이 큰 것이고, 달리 보면 통합 관리가 잘 안 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 독이 된 김범수 의장 '자율경영'

일각에서는 카카오 창업자 김 의장의 조직 장악력을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기도 한다. 계열사들의 '자율 경영'을 중시하던 카카오는 2017년에야 '카카오 공동체 컨센서스센터'를 만들어 콘트롤 타워로 삼기로 했다. 하지만 이 센터에서 김 의장이 반대 의견을 내도 계열사들이 '참고'만 하고 자신들의 전략을 그대로 실행한 경우가 많았다. 올초 카카오는 '카카오 공동체 얼라인먼트센터(CAC)'를 만들어 계열사 내부통제에 들어갔다. 그러나 여전히 각 계열사에 대한 '그립(장악력)'은 약하다는 평가가 대다수다.

카카오 지배구조를 잘 알고 있는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스톡옵션 등을 너무 많이 발행해서 현재 운신의 폭이 좁아진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주요 경영진의 인센티브 구조가 회사의 중장기적인 회사의 성장이 아니라 단기적인 주가상승과 투자금 회수에 집중하게 되어 있다는 얘기다. 다른 투자은행 관계자는 "창업 공신들이 적절한 시점에 물러났어야 하는데 아직 계열사 곳곳에서 회사 경영을 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회사의 덩치에 맞는 경영전략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라고 짚었다.

이상은/선한결/오현우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