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였다던 입양인에 '친부모가 기관 방문' 실토…"절차 위한 정보일 뿐"
입양절차 간소하게 하려고 '고아'로 출생기록 허위 기재
해외입양기관, 입양아 출생기록 위조 시인…"당사자에 사과"
해외로 영유아를 입양시키는 국내 기관이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입양 아동의 친부모 생존 여부 등 출생 기록을 허위로 작성했다고 당사자에게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확인됐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200명 넘는 해외 입양인에게서 출생기록 위조 등 해외입양 과정의 인권침해를 조사해달라는 신청서를 접수하고 본격 조사를 검토 중이다.

◇ 입양기관 "당신 배경에 어떤 정보도 담고 있지 않다"
'덴마크 한국인 진상규명 그룹'(DKRG)은 2016년 한국사회봉사회(KSS)가 덴마크로 입양된 A(45)씨에게 보낸 영문 편지를 10일 공개했다.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A씨는 2016년 친부모를 찾기 위해 자신을 입양시킨 KSS에 연락했다.

KSS는 A씨에게 보낸 편지에서 "당신의 입양 문서에 잘못된 정보가 적힌 데 대해 사과드린다.

그 정보는 그저 입양 절차를 위해 만들어졌을 뿐 당신의 입양 배경에 대한 어떠한 (실제) 정보도 담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복잡한 입양 절차를 간소화하고 향후 양육권을 둘러싼 문제를 피하려고 기록을 위조했다고 시인한 것이다.

A씨는 그동안 입양문서에 적힌 대로 자신이 고아로 입양기관에 맡겨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KSS는 편지에서 입양 당시 A씨의 친부모가 직접 기관을 방문했었다며 '진짜' 정보를 뒤늦게 공개했다.

A씨로선 위조된 기록 탓에 부모와 더 일찍 재회하지 못한 셈이다.

심지어 입양이 이뤄지기 전 생모가 A씨를 다시 데려가려 했으나 거절당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KSS 관계자는 편지 내용과 관련해 연합뉴스에 "달리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해외입양기관, 입양아 출생기록 위조 시인…"당사자에 사과"
◇ 이미 숨진 아동으로 둔갑하기도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을 신청한 입양인 277명 중 다수는 A씨처럼 위조된 입양 문서에 적힌 정보가 자신의 진짜 출생 배경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이미 사망한 다른 아동의 정보가 문서에 적힌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입양기관은 이들이 성인이 돼 연락하면 과거 기록이 잘못됐다고 해명하다가, 항의가 계속되면 다른 기록을 공개하는 식의 대응을 반복하고 있다고 DKRG는 전했다.

DKRG에 지난달 피해 사례를 제보한 B(53)씨는 1976년 대전에서 부모 형제와 생활하던 중 낯선 이에 의해 홀트아동복지회(홀트)로 보내졌다고 한다.

일곱 살 때 입양돼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B씨는 성인이 돼 확인한 입양문서가 거짓 정보로 채워진 것을 발견했다.

홀트는 B씨의 문의에 '당신은 재봉사로 일하던 홀어머니에 의해 입양됐다'는 또다른 해명을 내놨다.

1970년 홀트를 통해 노르웨이로 입양된 정경숙(53)씨의 입양문서에는 정씨가 '1968년생 고아'라고 적혀있다.

그러나 정씨는 1987년 한국의 자매와 재회한 뒤 자신이 1969년생이며, 가족이 있는데도 '비자발적'으로 입양됐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아버지가 정씨를 잠시 병원에 입원시켰는데 며칠 뒤 돌아가 보니 아이가 사라졌다는 게 정씨의 주장이다.

DKRG 공동대표인 피터 뭴러(한국명 홍민) 변호사는 KSS의 답장에 대해 "입양기관이 당시 기록을 위조하는 등 불법을 자행했다는 것을 자백한 셈"이라며 "그런데도 기관들은 정확한 정보 공개를 거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외입양기관, 입양아 출생기록 위조 시인…"당사자에 사과"
◇ KSS "드릴 말씀 없다"…홀트 "법적·문화적 차이로 오해"
홀트 관계자는 "2012년 전까지 법에 따라 입양기관에 아동이 맡겨지면 그 아동을 호주(戶主)로 하는 호적을 만들어야 했는데, 일부 입양인이 이 호적을 보고 자신이 고아로 표기됐다고 오해하는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호적과 별개로 당시 입양 문서에는 친부모 유무 등을 표기했다"고 반박했다.

출생 기록이 허위로 작성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문서에 사실만 기록했다"고 부인했다.

이어 "한국과 외국의 법적·문화적 차이에서 오해가 생기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공개를 원하는 입양인에게 기록을 제공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해외입양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한 노혜련 숭실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해외에서는 부모가 있는 아동은 입양을 받지 않는 경우가 많아 과거 국내 입양기관들이 기록을 바꿔 아동이 고아라고 표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입양기관들은 예전의 잘못을 시인하고 해외로 입양된 이들이 정체성을 찾을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자료를 공개하고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실화해위는 우선 해외 입양인들의 신청서를 검토한 뒤 조사개시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조사가 본격 진행되면 이들의 출생기록이 뒤바뀐 구체적 경위와 이유, 그 과정에서 과거 정부의 개입 여부 등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