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구에서 분양가보다 최대 1억원 낮은 매물이 나오고 미분양도 빠르게 늘고 있다. 곳곳에서 역전세난 때문에 잔금을 치르지 못하는 분양자도 증가하고 있다. 대구 주택시장에서 미분양 아파트가 2만 가구를 웃돌았던 10여 년 전 최악의 상황이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확산하고 있다.

4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준공 후 첫 입주가 진행 중인 중구 태평로3가 ‘대구역 경남센트로팰리스’에선 2019년 5억3300만원에 공급된 전용면적 84㎡ 고층 물건이 4억3300만원에 급매로 나왔다. 마이너스 프리미엄 분양권 거래는 매수인이 대출과 채무를 승계하는 대신 매도자에게 일부 돈을 받는 식이다. 손해를 보면서까지 분양권을 처분하는 것은 잔금에 부담을 느낀 계약자가 많기 때문이다. 잔금을 못 내면 고율의 연체이자를 물고 신용불량자가 될 수도 있다. 태평로3가 A공인 관계자는 “비슷한 가격대 매물이 여러 개 있는 데다 인근에 입주 물량이 많아 전세나 매매 계약이 잘 안 된다”며 “주택경기가 좋았던 시절 중도금은 대출받고, 잔금은 전세금을 받아 낼 생각으로 무리하게 분양받은 사람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중구 일대 새 아파트 전셋값(전용 84㎡ 기준)은 지난해 4억5000만원 안팎까지 올랐으나 최근 2억5000만원 선으로 내려앉았다.

다른 지역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동구 율암동 ‘안심뉴타운 시티프라디움’에도 마이너스 프리미엄 4000만원짜리 매물이 있다. 저가 매물 중엔 취득세를 아끼려고 등기 전에 분양권을 손절매하려는 다주택자 물건도 상당수라는 게 중개업소의 설명이다.

준공까지 비교적 기간이 꽤 남은 단지에서도 분양권을 손절매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입주 1년을 남긴 동구 신암동 ‘해링턴플레이스 동대구’ 인근 중개업소엔 분양가보다 3000만원가량 싼 5억700만원(전용 84㎡·고층)짜리 마이너스 프리미엄 분양권이 다수 나와 있다.

업계에서는 대구 주택시장에 공급 과잉이 1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대구 입주 물량은 2만4969가구이고, 내년엔 3만2554가구로 더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올초 1977가구에 불과했던 미분양 규모는 지난 8월 말 8301가구로 급증했다. 향후 공급 예정인 단지가 많은 게 더 큰 문제다.

건설사와 개발업체는 미분양 아파트 할인 분양을 서두르고 있다. 라온건설은 4월 7억원대 후반에 분양한 수성구 신매동 ‘시지 라온프라이빗’을 최대 7000만원(전용 84㎡) 할인해 공급하고 있다. 시스템에어컨을 무상으로 설치해 주고 중도금을 무이자로 빌려주는 등 실질적으로 8000만원 이상의 혜택을 주고 있는 셈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아파트 계약자에게 BMW7 시리즈를 증정하고 아파트 ‘원 플러스 원’ 행사까지 나온 당시 모습이 되풀이될 조짐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