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두 번째)가 29일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에 반대하며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 앞을 지나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두 번째)가 29일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에 반대하며 피켓과 플래카드를 들고 시위하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들 앞을 지나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고 있다. /뉴스1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이 29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했다. 윤석열 대통령 미국 및 영국 순방 과정에서 나타난 각종 문제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국회에서 국무위원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건 역대 일곱 번째다. 해임건의안은 법적 구속력이 없어 윤 대통령이 받아들일 가능성이 낮은 만큼 실제 박 장관의 해임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민주당 “외교 참사 책임져야”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재적의원 170명 중 168명 찬성으로 의결했다. 반대와 기권은 1표씩 나왔다. 국민의힘(115명)과 정의당(6명) 의원 전원은 표결에 불참했다. 국무위원 해임건의는 재적의원 3분의 1(100명) 이상 발의와 재적의원 과반(150명)의 찬성으로 의결된다.

민주당은 지난 27일 의원총회에서 박 장관 해임건의안 당론 발의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민주당은 소속 의원 169명 전원 명의로 발의한 해임건의안에서 “윤 대통령의 영국·미국·캐나다 순방 외교가 아무런 성과도 없이 국격 손상과 국익 훼손이라는 전대미문의 외교적 참사로 끝난 데 대해 주무장관으로서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적시했다.

해임건의안 처리는 막판까지 진통을 겪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김진표 국회의장 중재로 이날 오전부터 담판을 벌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국민의힘에선 주호영 원내대표 등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이 김 의장을 찾아가 “여야 합의 없는 본회의 직권상정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당초 김 의장과 민주당은 오후 3시에 본회의를 여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국민의힘 요청으로 오후 6시로 늦췄다. 박 장관이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 방한 일정을 수행 중인 것을 감안한 것이다.

국민의힘 “헌정사에 오점”

해임건의안이 민주당 주도로 통과된 데 대해 국민의힘은 강력 반발했다. 통과 직후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주장하는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 사유 그 어디에도 합당한 이유라곤 찾아볼 수 없다”며 “헌정사에 영원히 오점으로 남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표결에 앞서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본회의에서 여야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된 안건이 일방적으로 상정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라며 “이번 (비속어 논란) 사태는 사적인 대화에 공식적이지도 않은 녹화와 녹음을 실시하고 백번을 들어도 명확하게 들리지 않고 5000만 국민이 들어도 확실하지 않은 내용을 갖고 자막을 조작해 벌어진 일”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실도 국회에서 박 장관 해임건의안이 논의된 것에 유감을 나타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표결에 앞서 “미국과의 협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언론은 한·미동맹을 날조해 이간시키고, 정치권은 그 앞에 있는 장수의 목을 치려고 하고, 이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역대 6명 중 5명 자진 사퇴

정치권에서는 여권이 비속어 논란 제기를 ‘국정 발목 잡기’로 규정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이 법적 구속력도 없는 해임 건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의 출근길 문답에서 “박 장관은 탁월한 능력을 가진 분이고 국익을 위해 전 세계로 동분서주하는 분”이라며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는 국민께서 자명하게 아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철호(1955년), 권오병(1969년), 오치성(1971년), 임동원(2001년), 김두관(2003년) 전 장관은 국회에서 해임건의안이 통과되자 자진 사퇴했다. 반면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해임건의안이 의결된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박 전 대통령이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혀 자리를 지켰다.

박 장관은 해임건의안 통과 직후 “흔들림 없이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박 장관은 30일 주한 중남미외교단과 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