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콘 되는 첫 번째 비결은 생존…배수진 치고 바퀴벌레처럼 버텨라"
“성공 스타트업이 되는 비결이요? 일단 바퀴벌레처럼 살아남는 게 첫 번째입니다.”

기업용 채팅 서비스 업체인 센드버드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국인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1호로 유명하다. 지난해 4월 시리즈C 투자를 유치하면서 1조1000억원의 몸값을 인정받았다.

김동신 센드버드 대표(사진)는 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아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절박함’이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서울 강남 센드버드코리아 사무실에서 한국경제신문의 스타트업 미디어 플랫폼 한경 긱스(Geeks)와 인터뷰를 하고 “2015년 미국에 갈 때 ‘파부침주(밥 지을 솥을 깨뜨리고, 돌아갈 때 타고 갈 배를 가라앉힌다는 고사성어)’의 심정으로 한국 집을 팔았다”며 “가서 망하더라도 일단 10년은 버티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 사업을 펼치면서 모토가 ‘빡세게 한다’였다. 스타트업에 ‘야근’은 글로벌 공용어라고도 했다. 2017년 센드버드가 미국 소셜미디어 레딧의 계약을 따내려고 분주히 움직일 때였다. 김 대표와 팀원들은 첫 미팅을 마치자마자 레딧 건물로 출퇴근했다. “나오라고 시킨 것도 아니었는데 계속 출근하고, 그 직원들 다 퇴근할 때까지 남아서 일했다”고 했다. 나중엔 보안팀 직원이 나와서 “이제 그만 좀 나오시라”고 말릴 정도였다. 센드버드가 묵묵히 버티는 사이 많은 경쟁사가 사라져갔다. 그는 “점쟁이도 3년은 판 깔고 있어야 입소문이 난다”며 “버티는 힘과 집착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센드버드를 유니콘 기업으로 키운 또 하나의 비결은 빠르게 글로벌화하는 것이다. 심지어 한국 기업에 보내는 제안서와 계약서도 모두 영문으로 작성했다.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센드버드는 한국에 있을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구독 방식의 기업용 채팅 솔루션을 내놨다. 하지만 고객사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당시만 해도 매달 요금을 내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방식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센드버드가 미국 진출 후 보낸 영문 제안서에는 반응이 달랐다. 구독형 모델에 거부감을 나타내던 업체들은 ‘해외 트렌드’ 앞에서 우호적 반응을 보였다. 김 대표가 “한국에서 사업을 끝낼 생각이 없다면 해외 진출이 오히려 더 빠른 고속도로”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실리콘밸리에 있으면서 가장 놀랐던 점은 투자사의 편견 없는 태도”라고 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창업자가 ‘대박’ 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보다 보니, 투자사가 ‘내가 바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항상 염두에 둔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하버드’로 불리는 Y콤비네이터(YC)의 초기 창업 지원 프로그램은 김 대표가 “마른하늘의 단비”로 표현할 정도로 센드버드의 기틀을 형성했다. 센드버드는 2016년 100 대 1에 달하는 경쟁률을 뚫고 이 프로그램에 선정됐다. YC를 등에 업은 센드버드는 날개를 달았다. 가장 큰 수혜는 함께할 수 있는 동료를 얻은 것이라고 했다. “‘배치 메이트’라고 불러요. 일종의 동기 친구 개념입니다. 저희 기수에 잘된 회사가 많습니다.”

그를 ‘반성’하게 만드는 회사도 있다며 웃었다. “YC에 와서 초음속 비행기를 만들겠다고 한 거예요. 로켓을 쏘겠다는 곳도 있었습니다. ‘바보들인가?’ 생각하기도 했는데 정말 만들어버리는 겁니다.” 김 대표를 놀라게 한 스타트업 붐슈퍼소닉과 랠러티비티스페이스는 미국 스타트업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회사이자 그의 든든한 동기들이다.

김 대표는 ‘거짓 없는’ 네트워킹을 할 것을 권장했다. 센드버드를 실리콘밸리 유니콘 기업으로 만든 세 번째 비결이다. 그는 “어차피 사업하는 사람들은 주변 친구들의 공감을 얻기 쉽지 않다”며 “비슷한 창업가들과의 소통을 통해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s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