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한국경제신문의 긴급 설문에 참여한 국내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이르면 이달 내 1400원을 넘어설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이례적인 고(高)환율 상황이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이른바 ‘킹(king)달러’ 현상에 다른 주요국 통화가 동시에 약세 압력을 받는 상황이지만, 중국 경기나 반도체 업황 등 유독 원화가치 변동에 큰 영향을 미칠 변수가 산재해 있기 때문이다.

“내년까지 환율 오를 수도”

미국 달러화가 주요국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다. 8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에 설치된 달러화 대비 주요국 환율 시세판.  김범준  기자
미국 달러화가 주요국 통화 대비 강세를 보이고 있다. 8일 서울 명동 하나은행 본점에 설치된 달러화 대비 주요국 환율 시세판. 김범준 기자
정유탁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 고점을 1400원까지 열어두고 있다”면서도 “워낙 악재가 많아 1400원이 뚫리면 마땅한 저항선이 사라져 이후에는 20원, 50원 단위로 올라갈 수 있다”고 예상했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겸임교수는 “일시적으로 원·달러 환율이 1400원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한·미 간 기준금리 역전이 원·달러 환율 상승을 부채질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오는 20~21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현재 연 2.5%로 같은 한국과 미국(상단 기준)의 금리는 역전돼 0.75%포인트 차로 벌어진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부 교수는 “FOMC의 결정으로 한·미 금리가 역전될 텐데 금리 차가 클수록 환율은 상승한다”며 “이달 1450원 내외로 고점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원·달러 환율이 진정세를 보일 시기에 대해서는 다른 전망이 나왔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연말까지는 달러가 강세를 보이겠지만, Fed가 자이언트스텝을 멈추면 환율 급등세는 잦아들 것”이라고 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그러나 “미국과의 통화 스와프 같은 조치가 없는 이상 환율이 빨리 안정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근 환율 상승은 과도해”

"단기 과열이지만…원·달러 1400원 뚫리면 20원, 50원씩 오를 수도"
최근 원·달러 환율의 상승 속도가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지난 7월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상)에 나선 이후 이달 7일까지 달러 대비 원화 가치는 5.91% 떨어졌다. 이 기간 일본 엔화(-4.7%), 중국 위안화(-1.36%), 유럽연합 유로화(-1.37%) 등과 비교해도 가치 하락이 두드러진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Fed의 긴축 속도와 경제 여건을 고려해도 이 정도로 환율이 오를 만한 이유는 없다”며 “지금 시장이 너무 과열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백석현 신한은행 이코노미스트는 “투기 세력이 한국 원화만 특별히 공격하는 상황은 아니다”며 “달러 유동성 경색이 없다면 당국이 무리하게 외환보유액을 활용할 이유나 동기도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향후 원화 약세(환율 상승)를 부추길 악재로는 중국의 경기 침체에 따른 위안화 약세가 꼽혔다. 김승혁 NH선물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은 위안화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며 “중국 경제가 둔화할 것으로 보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위안화 약세 베팅을 원화 매도로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중국의 부동산 시장에서 신용 위기가 나타날 가능성도 작지 않다”며 “한국은 거시건전성이 나빠서가 아니라 대외 노출도가 높기 때문에 중국 영향을 크게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유럽의 에너지 대란이 심화하면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반도체 수출 둔화 뇌관

8월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이 제기되는 등 교역 상황이 악화하고 있는 것도 원·달러 환율 상승을 제어하기 어려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이승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한국이 5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며 “결국은 환율을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전날 한국개발연구원(KDI)은 ‘9월 경제동향’에서 한국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산업의 경기 하강이 향후 한국 경제의 성장세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요한 것은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과 경상수지, 환율 등이 안정될 수 있다는 믿음”이라며 “달러 유동성도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조미현/강진규/황정환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