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슬기로운 로펌 사용 설명서
옛날 어느 귀부인이 중병에 걸려 여러 의원을 만나 진료를 봤는데도 낫지를 못해, 절박한 심정으로 먼 길을 떠나 당대 최고의 명의를 만나 진료받기로 했다. 명의는 귀부인을 진료하려 하였으나, 귀부인은 지체가 높고 남녀 구분이 있다 하여 가마에서 내리지도 않고 명의가 알아서 처방을 잘 하기를 원하였다.

이에 명의는 진료를 거부하며 “무릇 진찰에는 보는 망진(望診), 듣는 문진(聞診), 묻는 문진(問診) 그리고 진맥을 통한 절진(切診)이 있는데, 그 어느 진료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으니 내 어찌 진료를 다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말하였다. 이에 귀부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문진에 성의 있게 응하여 결국 병이 다 나을 수 있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환자의 상태를 잘 살핀 뒤 이에 의학지식을 적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의료 서비스와 고객이 처한 사실관계를 면밀히 파악한 뒤 관련 법령을 적용해 판단하거나 해결 방법을 조언해주는 법률 서비스는 그 방법에 있어 비슷한 점이 많다.

변호사들은 법률 지식을 부단히 연마하는 것은 기본이고, 실무를 잘하기 위해 항상 고객이 처한 상황을 세세하고 정확하게 파악하고 놓치는 부분이 없어야 한다. 필자는 소속 로펌 변호사들에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고객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고객의 이메일 몇 줄에 쓰여 있는 것으로 사실관계를 다 이해하기보다는 가능하면 회의하기를 권하고 시간이나 장소 등의 제약이 있으면 하다못해 전화 통화라도 하라고 조언한다.

로펌의 대표변호사가 돼 고객 경영진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하면 로펌의 법률 서비스를 잘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그럴 때 위와 같이 변호사들이 사실관계를 충분히 그리고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답한다.

흔히 대학병원에 가면 특진비를 내서라도 교수에게 직접 진료받고 싶어 하는 환자가 많다. 로펌도 비슷하다. 아무래도 실무 경험과 사회 경륜이 쌓인 파트너 변호사가 일을 더 들여다보게 된다. 진행하는 업무와 관련해 로펌에 연락할 일이 있으면 젊은 변호사를 거치기보다 직접 파트너 변호사에게 연락하는 것이 효율적일 때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