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카운티 미술관…소복히 눈 덮인 불국사 >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 전시된 박대성 화백의 대형 수묵화 ‘불국설경’(1996년).  로스앤젤레스=이선아  기자
< LA카운티 미술관…소복히 눈 덮인 불국사 >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 전시된 박대성 화백의 대형 수묵화 ‘불국설경’(1996년). 로스앤젤레스=이선아 기자
미국 서부의 최대 미술관인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주요 전시 공간 중 한 곳인 1층 레스닉 파빌리온 전시관에 들어서면 한국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하얀 눈이 덮인 소나무들이 가지를 늘어뜨린 사이로 경주 불국사가 보인다.

박대성 화백의 ‘우공투양도’(2013년).
박대성 화백의 ‘우공투양도’(2013년).
폭 10m, 높이 3m의 거대한 그림이다. 뒤로 멀찍이 물러나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은 ‘공백(空白)’이다. 한지의 빈 공간을 눈으로 표현하고, 절과 나무, 바위는 검은 먹으로 그려냈다. 화려한 채색 없이 먹의 농담으로 그려낸 천년고찰의 풍경. 박대성 화백(77)의 ‘불국설경’(1996년)이다.

지난 23일 찾은 박 화백의 개인전 ‘박대성, 고결한 먹과 현대적 붓’은 다양한 인종의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작품 앞에 서서 가만히 몰입해 그림을 바라보는 관람객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난달 개막한 이 전시회에는 ‘불국설경’을 포함해 총 8점의 수묵화가 걸렸다.

현대 수묵화의 대가로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인 박 화백은 정식으로 미술을 배운 적이 없다. 1945년 경북 청도에서 태어난 그는 6·25전쟁 때 다섯 살의 나이로 부모님을 여의고, 왼손도 잃었다. 초·중학교 졸업이 그가 받은 유일한 정규 교육이었다. 박 화백은 의수를 달고 평생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다.

작품 대부분은 박 화백이 직접 눈으로 본 풍경이다. ‘불국설경’은 그가 1995년 불국사의 손님방에 1년간 머무르면서 딱 한 번 본 설경이었다. 이 작품의 왼쪽에 걸린 ‘금강산’(2004년)도 박 화백이 1998년 겨울에 금강산을 방문한 기억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살을 에는 듯한 추운 날씨에도 금강산의 모습을 담기 위해 고량주에 먹을 타서 스케치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전통 수묵화의 명맥을 잇는 동시에 현대적이고 독창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경주남산’(2017년)을 보면 알 수 있다. 굵고 역동적인 선을 통해 사실적으로 산맥을 표현하면서도 불상, 다보탑 등 경주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을 곳곳에 배치하는 등 추상화적 요소를 더했다. 박 화백은 실제로 중국과 대만에서 전통 수묵화를 익혔고, 1990년대엔 미국 뉴욕에 머무르며 현대미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박 화백의 그림은 독창적이고 새로운 시도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았다. 특히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은 그를 각별히 아꼈다. 1988년 이 회장이 당시 40대 초반의 신진 작가인 박 화백을 불러 “존경한다”고 말하고, 집무실에 그의 그림을 걸어놓은 일화는 유명하다. 청와대 소장품에도 그의 작품이 포함돼 있다. 올가을 열리는 청와대 소장품 전시회에 그의 그림이 전시될 예정이다.

국내뿐만이 아니다. 그의 수묵화는 해외에서도 ‘러브콜’이 끊이지 않는다. LACMA는 이번 전시회를 열기 위해 수년간 공을 들였다. 올해에만 미국에 이어 독일, 카자흐스탄, 이탈리아 등에서 잇따라 박 화백의 개인전이 열린다. LACMA전시는 12월11일까지.

로스앤젤레스=이선아 기자 sun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