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성희롱 사건, 피해자 의견 묻지도 않고 가해자 사표부터 받았다간…
팀원(女)이 회식 자리에서 영업팀장(男)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는 신체접촉을 했다는 사실을 회식 다음 날 경찰에 신고했다. 사내 신고를 겸한 인사팀 면담을 통해서는 “영업팀장이 사과를 하지 않는다. 엄중히 조치해 달라”고 심경을 밝혔다. 이후 팀원은 연차를 쓰며 계속 출근을 하지 않고 전화, 메시지 등 일체의 연락까지 끊었다. 그러나 기업 조사 과정에서 영업팀장은 신고 사실을 부인하고, 동행 직원들은 신체접촉을 보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조사를 담당한 인사팀장이 처리 방향을 고심하던 중에 돌발 변수가 생겼다. 대기발령 중이던 영업팀장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지만, 물의를 일으킨 책임을 지고 징계 전 사직하겠다”며 사직서를 제출한 것이다.

인사팀장은 사직을 즉시 수리하기로 하고, 경영진에 승인을 요청했다. 그 근거는 △영업팀장은 신고사실을 부인하고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므로 독자적으로 사실관계를 판단함이 곤란하고 △신고 사실을 인정해도 팀원이 만족할만한 중징계가 가능한지 불확실하며 △때를 놓치면 팀장이 사직 의사를 철회할 우려가 있고 △영업팀장이 계속 재직하면 업무변경, 업무장소 구분과 같은 까다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팀원 복귀 후 2차 피해 방지에도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례에서 직장 내 성희롱 가해자로 지목된 영업팀장 사직을 수리하려는 인사팀장의 결정은 적절할까? 아니라면 어떤 문제가 있을까?

우선, 서둘러 사직을 수리하려는 인사팀장 의도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는 가해자 퇴사가 이루어지면 징계까지 원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징계와 그 이후 분쟁 과정에서 2차 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인사팀장도 이 점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 외에 △신고 사실을 인정하고 징계한 뒤 경찰 조사 결과 무혐의 처리되면, 징계 조치 적법성에 대한 다툼이 일어날 위험이 커지는 점 △영업팀장이 부인하고 목격자 진술도 없는 일회성 성희롱을 이유로 중징계 처분을 하는 것은 영업팀장의 반발을 살 우려가 있는 반면, 경징계를 하면 이번에는 팀원이나 다른 직원들 반발이 우려되는 점 △영업팀장이 계속 재직하면 어느 일방의 업무 조정이 불가피한데 소규모 기업일수록 그에 따른 인사 운영상 부담이 큰 점도 사직 수리 방안이 가진 긍정적 측면이다.

이처럼 나름 설득력 있는 근거에도 이 사례에서 사직 수리 결정은 심각한 결점이 있다. 팀원과 사전에 적극 연락해 의견을 청취하고, 그 의견을 반영해 진행 방향을 재고하는 노력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남녀고용평등법상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사실이 확인되면 기업은 징계 등 조치 전에 그 조치에 대해 피해자 의견을 들어야 한다(제14조 제5항). 사례에서 사직 수리 전에 팀원 의견을 청취하지 않은 사실을 정당화 하려면, 기업은 직장 내 성희롱 사실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입장은 아무래도 궁색하고 팀원 반발을 살 염려가 크다. 의견 청취 절차를 이행함이 분쟁 소지를 없애는 안전한 길이다.

팀원은 영업팀장이 사직하면 그 이상 징계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도 근거가 약하다. 팀원은 경찰 신고까지 한 상태이고, 영업팀장은 신고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첨예한 입장 대립 상황에서 기업이 사직을 수리하고 사안을 종결하면, 실제 직장 내 성희롱 사실이 있었는지에 대해, 나아가 팀원이 불순한 의도로 소위 ‘가짜 미투’를 한 것이 아닌지에 대해서까지 논란이 생길 염려가 있다. 편의적 사건 해결에 급급할 뿐, 조직 내 불건전한 회식 문화를 개선하려는 의지가 없다는 인식이 퍼지는 것도 문제다.

기업과 연락을 거부하고는 있지만, 팀원은 아마 기업의 대응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을 것이고, 사직수리 같은 중요 사항에 대해 메시지를 남기면 확인 및 답신할 것이라고 예상함이 상식적이다. 그리고 메시지 확인 사실은 수신확인기능으로 쉽게 알 수 있다. 그 기능을 활용하면 팀원 의사 확인은 아주 간단하다. 이런 손쉬운 조치도 하지 않고 사직을 수리한다면 기업이 피해자 존중의 원칙을 무시한다는 반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사직 수리를 서두르는 입장 근저에 팀원이 영업팀장 사직에 반대하면 불가피하게 발생할 복잡한 문제를 피하고 싶은 편의적 의도가 없는지 한번 돌아볼 필요도 있다.

그 외에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의 입증이 없음을 이유로 형사책임은 인정되지 않더라도, 그 사실만으로 영업팀장 징계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므로 (대법원 2015. 3. 12. 선고 2012다117492 판결 참조), 기업은 경찰 조사 경과와 무관하게 징계절차를 진행할 수 있는 점 △팀원이 신속히 경찰과 기업에 신고한 점이나 최근 성비위행위 사건에서 법원이 성인지 감수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고려할 때 (대법원 2017. 12. 22. 선고 2016다202947 판결 참조), 영업팀장이 부인하고 다른 목격자 진술이 없더라도 신고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는 점도 기업이 사직 수리 전 팀원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는 입장의 근거가 된다.

사례와 유사한 다른 사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기업이 출근과 의사소통을 모두 거부하던 피해자에게 문자 메시지로 사직 수용 여부에 관한 의견을 물었다. 그러자 즉각 피해자로부터 “절대 사직을 수용할 수 없다. 반드시 해고해야 한다”는 답신이 왔다. 피해자는 신고 당시에는 가해자 해고에 관한 언급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연락을 하지 않는 동안 형사고소를 본격 진행하면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까지 준비하고 있었고, 해고 사실을 유리하게 활용할 계획도 세워둔 상태였다. 기업이 피해자 의견 청취 없이 즉시 사직을 수리했다면 피해자는 기업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기업은 답신을 받고 사직 수리를 보류하였고, 징계위원회를 열어 직장 내 성희롱 사실을 인정하고 가해자를 징계했다. 단, 수위에 있어서는 해고는 과하다고 판단하여 정직 처분을 했다. 그리고 처분 직후 정직기간 종료 전 사직을 수리하는 정도로 마무리했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즉시 사직하려는 당초 의사와 다르게 처리된 셈인데, 사직은 수리를 하지 않는 이상 통고로 즉시 효력을 발생하지 않고 1개월 후 효력을 발생하는 점을 활용했다(민법 제660조 제2항).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은 가해자의 사실 인정 여부, 조사대상자 수 등에 따라 종결에 시간이 걸릴 수 있는데, 그 경우 2차 피해, 업무 분위기 저해, 비밀누설 등으로 인한 추가 분쟁과 같은 부작용이 발생할 염려가 있다. 따라서 기업은 가해자 사직 수리를 통한 신속한 종결을 선호한다. 그러나 신속한 종결을 염두에 두더라도, 사직 수리 전 피해자 의견을 청취하고 합리적 한도에서 반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점은 기억해야 한다.

조상욱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노동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