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의 방한 과정에서 의전 홀대 논란이 불거졌다. 펠로시 의장이 그제 밤 경기 평택 오산기지에 도착했을 때 우리 정부와 국회에서 누구도 공항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윤석열 대통령은 펠로시 의장을 만나지 않고 전화 통화로 갈음했다.

윤 대통령과 펠로시 의장의 만남 불발에 대해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휴가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다가 ‘중국 눈치 보기’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전화 통화 일정을 공개했다. 물론 우리 정부의 고민은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은 우리의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이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군사·경제적 강수를 잇달아 내놓고 있는 마당이어서 섣불리 움직이다간 그 불똥이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한국으로 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전략적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찾은 절충점이 전화 통화일 것이다. 대통령실이 “국익을 총체적으로 고려한 결정”이라고 한 것도 그래서다. 그 때문에 이를 두고 ‘동맹 외교 노선 수정’이라고까지 비판하는 것은 과도하다.

그러나 뒷맛은 개운치 않다. 휴가 중이라도 서울에 있는 윤 대통령이 중국을 자극하지 않고 만나는 방도는 있었을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도 웬만한 미국 의원과 국무부·국방부 장관을 대부분 만나온 터다. 더욱이 펠로시 의장은 이번 순방에서 대만,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일본 정상들과 만났거나 만날 예정이다. 펠로시 의장이 대만 방문 강행 직후 방한해 세계가 주목하는 상황에서 면담 불발이 잘못된 신호를 줄 수도 있다.

펠로시 의장이 입국할 때 우리 측에서 아무도 마중 나가지 않은 것은 외교적 결례다. 오산기지엔 주한 미국대사와 미군사령관 등 미측 인사들만 펠로시 의장을 영접했다. 혈맹 국가 의전 서열 3위의 방한에 이런 홀대를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 한·미 국회의장 회담을 위해 방한한 만큼 최소한 국회 의전팀이라도 공항에 나갔어야 했다. 국회 측은 “미측과 사전 협의했다”고 했으나 예의가 아니다. 펠로시 의장 측이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리 정부는 의전 홀대 논란과 면담 불발이 동맹에 금이 가지는 않도록 만전을 기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