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뉴턴 서명 담긴 헌장에…한글 이름 '이상엽' 써넣었죠"
“역대 영국왕립학회 회원들의 서명이 찰스 다윈, 아이작 뉴턴, 스티븐 호킹 등 1665년부터 이어졌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에 제가 서명을 하는데 영문으로만 하기가 아쉬운 겁니다. 그래서 우리 한글로 ‘이상엽’ 세 글자를 써넣고 나왔습니다.”

이상엽 KAIST 연구부총장·특훈교수(사진)는 28일 대전 KAIST 연구실에서 한국경제신문과 만나 영국왕립학회 회원 헌장에 이름을 적어 넣을 당시 상황에 대해 이같이 말하며 웃었다. 가입식은 지난달 말 영국 런던에서 열렸다. 이 부총장은 영미권 출신이 아닌 국가에서는 유일하게 세계 3대 학술원인 영국왕립학회와 미국공학한림원, 미국국립과학원에 이름을 올리는 진기록을 세웠다.

이 부총장은 ‘시스템대사공학(System Metabolic Engineering)’의 창시자다. 시스템대사공학은 미생물 등의 유전자를 합성해 인간에게 필요한 물질을 만들어내는 기술이다. 다양한 바이오의약품 등도 시스템대사공학의 산물이다. 그는 코로나19 최종 치료 물질을 찾아내기 위해 30여 만종의 후보물질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하며 실험하고 있다.

이 부총장의 별명은 ‘연금술사’다. 그의 연구실엔 썩는 플라스틱, 총천연색 식용색소, 강철보다 튼튼한 거미줄 섬유, 바이오 항공유 등이 끝없이 만들어져 나온다. 그는 대장균을 이용해 휘발유를 만들어내는 기술을 2013년 10월 세계 최초로 발표했다. 이는 세계 3대 학술지 네이처에 표지논문으로 게재했다.

최근에는 딸기맛 우유 등 식품과 매니큐어, 립스틱 등 화장품에 사용되는 붉은색 천연색소 카르민산을 생산하는 미생물 균주를 개발했다. 카르민산은 남아메리카, 페루 등 일부에서 서식하는 곤충인 연지벌레에서만 추출할 수 있었다.

이 부총장은 제자들에 대한 자랑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는 “제자들이 잘되는 게 목표”라며 “연구실을 거쳐 간 학생 중 국내외에서 대학교수를 하는 이들만 30명이 넘는다”고 했다. 제자들은 특히 산업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이 부총장의 제자 4명을 채용해 2·3-부탄디올을 생산하고 있다. 또 다른 스타트업은 이 부총장 연구실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제자를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채용하고 거미줄의 단백질 성분을 재연한 천연 원사(실)를 만들어 수술용으로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이 부총장은 서울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1991년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생물화학공학 석사와 박사를 마쳤다. 제1회 젊은과학자상,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 한국공학한림원 대상 등을 받았다.

대전=김진원 기자 jin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