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김동연의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김대훈의 경기도는 지금]
"오늘 세 분 순직한 소방관들 자녀분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했습니다. 올해 1월 평택 물류센터 화재 당시에도 젊은 소방관 세 분이 돌아가셨습니다. 당시 대선 주자였던 저는 빈소를 찾아 조문하면서 젊은 소방관들과 만났고, 남은 가족을 응원하면서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도 사랑하는 사람을 보낸 기억이 있기에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목소리가 떨렸다. 먼발치라 확인할 순 없었지만, 김 지사의 눈에도 약간 눈물이 고인 듯했다. 그는 22일 경기도 오피니언 리더들의 모임인 기우회에서 10여분간 인사말을 했다. 110여명 참석자는 김 지사의 말을 경청했다. 메모 한 장 없이 이어간 이야기에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지사는 고위 경제 관료 출신으로 '경제대통령' 꿈꿨다가 방향을 틀었다. 지난 6·1 지방선거에서 신승을 거둬 전라남북도, 제주도를 제외한 야권 유일의 광역자치단체장에 올랐다. 과거 여러 '잠룡'들이 거쳐 갔던 자리다.

김 지사는 취임 직후 78대 78 여야 동수로 구성된 의회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도의회, 정확히는 78명 국민의힘 의원과 '협치'를 두고 강하게 대치하고 있다. 지난 21일 경기도의회 국민의힘 소속 의원 10여명이 모였다. 이들은 도의회 마크가 새겨진 패널 뒷면에 '김동연 OUT'이라는 문구를 붙여 흔들었다. 그들은 김 지사의 가장 큰 문제로 '불통'을 꼽고 있다. 경제부지사 조례 신설, 추경안 발표 등의 행보에 의회와의 소통은 전혀 없다는 게 이들의 불만이다.
정치인 김동연의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김대훈의 경기도는 지금]
지미연 국민의힘 경기도의회 대변인은 "김 지사는 매번 여당을 향해 '협치하자', '논의하자'고 했지만, 현재까지 일방적 통보만 해왔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 지사가 함께 기획재정부에서 일한 김용진 전 차관을 경기도 경제부지사로 임명한 것을 두고 '모피아의 지방정부 장악'이라고 했고, 김 지사에 대해 '협치의 협 자도 모르는 분'이라고 날을 세웠다.

김 지사의 행정 능력, 즉 이성(로고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그는 기획재정부에서 쟁쟁한 관료들을 제치고 예산실장 2차관,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에 오른 인물이다. 기재부 시절엔 정책 기획통이자, 할 말은 하고 책임을 지는 관료로 유명했다. 2012년 4·13 총선을 앞둔 시점에 기재부는 그의 주도로 여야 복지 공약을 조목조목 비판한 보고서를 펴냈다. 이 보고서는 정치권의 노여움을 샀고, 김 지사는 결국 사의를 표명했다. 경제관료의 존재 가치를 증명한 사례이자, 공직자의 '유쾌한 반란(김 지사의 강연 제목)'으로 지금까지 회자된다.

이후 김 지사는 청년들과의 소통 강연 등 감성(파토스) 행보를 보였다. 전국으로 '유쾌한 반란'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다녔고, 기재부 차관 시절 본인과 같은 '흙수저' 출신의 실업계고·야간대 출신 고위 인사들의 모임인 청야(靑夜)회 봉사활동도 이어갔다. 유쾌한 반란은 소셜임팩트 사업을 하는 사단법인으로 이어졌고, 현재 청야 멤버인 박계신 디아센스코리아 회장이 이끌고 있다.

김 지사는 이날 강연에서도 청야 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분들은 공정하지 않은 출발선 탓을 하기보다 본인이 성장하는 데 사회와 국가, 주위 분들에게 너무나 많은 혜택을 받았다며 돌려줄 방법을 항상 고민했다."

하지만 현재 '정치인 김동연'에 대한 평가는 원칙주의자에 가깝다는 평이 우세하다. 임기 전 거론한 협치보단 도의회와 날 선 공방을 이어가는 탓이다. 김 지사는 이날 오후 오찬 간담회에서 “저는 남경필도, 이재명도 아니고, 김동연이다"며 "원칙까지 깨면서 기존의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의 길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도의회에 끌려다니지 않겠다는 의사를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김 지사의 행보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도의회의 한 관계자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여기서는 김 지사가 (의회를) 어르고 달래야 한다"며 "행정가인 김 지사가 정치인으로서의 할 일을 정무수석에게 맡기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 지사도 여당 의원들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적대감을 표출하는 이유를 곱씹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정치인에겐 정치인의 에토스(인품·인격)가 필요하다.

수원=김대훈 기자 daep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