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회사의 비금융사 투자를 엄격히 제한하는 금산분리와 금융사 본연의 업무를 다른 회사에 맡길 수 없도록 한 업무위탁 규제 등 전통적인 금융 규제를 대거 완화하기로 했다. 은행이 IT·플랫폼·부동산 회사를 인수하거나 대출 업무의 핵심인 신용평가를 플랫폼 기업에 위탁하는 등 이종(異種) 산업 간 결합과 혁신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19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제1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의 금융규제 혁신 추진 방향을 발표했다.

금융위는 우선 업무 범위와 자회사 투자 제한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금산분리 규제를 일부 완화하는 방안을 중점 추진하기로 했다. 현행 은행법에선 은행이 은행 관련 업종이 아닌 회사에 15% 넘게 출자하는 게 금지돼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업무 연관성’ 범위를 확장해서 해석하는 방식으로 하위 규정을 개정해 신속하게 효과를 내려 한다”며 “궁극적으론 법 개정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우리 금융산업에서도 방탄소년단(BTS) 같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출현할 수 있도록 새로운 장을 조성해야 한다”며 “금융규제의 새로운 판을 짜겠다”고 강조했다.

은행, 통신·유통·암호화폐 진출 허용된다
빅블러 시대…금산분리 손질

금융위원회가 19일 규제혁신 보따리를 대거 풀어낸 이유는 업종 간 경계가 흐릿해지는 ‘빅 블러’가 가속화하는 상황에서 금산분리 같은 시대착오적 규제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선 업권이나 업종별 칸막이 해제를 골자로 하는 이번 대책이 현실화하면 은행이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로 거듭나고, 온라인 플랫폼이 대출 외에도 보험 예금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소비자에게 맞춤형으로 추천 중개하는 게 가능해져 네이버·카카오표 ‘금융 백화점’이 탄생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금융위는 업권을 막론하고 금융·비금융 서비스 구분에 따른 규제를 유연화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글로벌 금융회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국내 금융회사도 할 수 있도록 허용할 것”이라고 했다.

특히 금융사가 할 수 있는 부수업무의 범위를 ‘본업과 관련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엄격하게 묶고 일일이 정해주는 현행 규제는 크게 완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은행들은 통신·유통·전자상거래 등은 물론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암호화폐·가상자산 관련 업무도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 미국 스위스 스페인 등 해외에선 대형 은행이 암호화폐 발행·수탁·송금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금융그룹의 숙원인 계열사 간 고객 정보 공유도 수월해질 전망이다. 지금은 고객이 동의해도 마케팅 목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계열사 간 앱을 합쳐 ‘슈퍼 앱’을 만들고 카드 보험 증권 등 다양한 상품을 맞춤형으로 추천하는 서비스를 꿈꾼 금융그룹들은 이 규제 탓에 서비스 구현이 어렵다고 호소해왔다. 보험업계는 보험그룹 내 ‘1사 1라이선스 규제’ 완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가령 생명보험사가 손해보험사도 자회사로 둘 수 있게 돼 공급이 많아지면 상품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융위는 규제 공백 상태인 암호화폐 조각투자 등 신산업 제도화에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올 하반기부터는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 작업에 본격 착수한다. 기본법에는 2011년 정부가 전면 금지했던 국내 암호화폐공개(ICO)를 허용하는 방안도 포함될 예정이다. ICO는 사업 초기 자금이 부족한 블록체인 프로젝트나 스타트업이 자체 개발한 코인을 장외에서 투자자에게 직접 팔아 자금을 마련하는 방식이다. 업계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암호화폐거래소를 통한 코인 발행(IEO)’을 우선 추진하는 것보다 전향적인 방안이라고 보고 있다.

금융위는 다음달 2차 금융규제혁신회의를 개최할 예정이다. 매달 1회 이상 회의를 열어 규제혁신 과제를 속도감 있게 상정하고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이인혁/빈난새 기자 twopeop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