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부부가 집을 구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신혼부부가 집을 구하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올해 초 결혼한 김모씨(36)와 강모씨(34) 부부는 생활형 숙박시설에 살고 있습니다. 전셋집을 겨우 마련했지만, 입주는 4개월 뒤에나 할 수 있단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단기 임대를 알아봤지만, 기간이 애매해 세를 놓는 집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당분간 생활형 숙박시설에 머물기로 결정했습니다.

#. 출장이 잦은 직장인 지모씨(40)는 이번 출장엔 비즈니스호텔 대신 생활형 숙박시설에 머물기로 했습니다. 과거엔 일반 모텔 등에 머물다 최근엔 그나마 깨끗한 비즈니스호텔을 주로 애용했는데, 하루 이틀은 상관없지만 일주일 이상 머물긴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생활형 숙박시설은 일반 아파트랑 비슷한 데다 밥도 해 먹고 빨래도 할 수 있는 등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어 훨씬 더 편하기 때문입니다.

생활형 숙박시설이 '주거'가 아닌 '숙박'이라는 원래 취지대로 운영되고 있는 곳들이 늘고 있습니다. 휴양지가 아닌 도시에 있는 시설들입니다. 지방에서 출장 차 올라온 샐러리맨 등 단기 숙박은 물론 전셋집 입주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은 신혼부부 등 장기 숙박 수요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11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생활형 숙박시설은 분양형 호텔과 오피스텔의 장점을 합쳐 놓은 상품으로 시작해 최근엔 아파트와 거의 유사한 형태로 발전했습니다. 아직은 단기 숙박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장기 숙박 비율도 꽤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특히 신혼부부들이 발길이 생활형 숙박시설로 향하고 있습니다. 신혼부부들이 생활형 숙박시설을 선택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전셋집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입니다. 임대차 3법의 시행으로 전셋값이 2중, 3중으로 늘어난데다 금리까지 오르면서 월세 전환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세입자들이 "단기간만 집을 쓰겠으니 싸게 달라"고 해도 집주인들은 믿지 못합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쓰거나 세입자가 나가지 않으면 난감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에 매매 및 임대차 매물 가격이 게시돼 있다. 사진=뉴스1
서울에 있는 한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에 매매 및 임대차 매물 가격이 게시돼 있다. 사진=뉴스1
시장에서 살림집이 들어갈 만한 아파트에서 '고가 전세시장', '고가 월세 시장'은 공급이 제법 있지만 '저가 단지 전세'나 '단기 임대'는 찾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신혼부부들은 더 곤란하다고 합니다. 없는 전셋집을 찾아다니다가 가격이 안 맞아 결국 월셋집을 구하게 되면 각종 살림살이 장만에 지출이 더 늘어서입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곳이 생활형 숙박시설이었습니다.

생활형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업체 관계자는 "의외로 신혼부부들이 꽤 있다"며 "대부분의 살림살이가 다 갖춰져 있고 기본적인 청소부터 조식 등 호텔에서 누릴 수 있는 서비스가 제공되다 보니 젊은 층이 선호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생활형 숙박시설을 찾는 큰 이유 중 하나는 집주인과 불화가 없다는 점입니다. 장기간 전세살이를 한 세입자들은 "전셋집에 들어가면 벽에 못도 하나 제대로 못 박는다"고 푸념하기도 하고, 말 빡빡한 집주인을 만난 세입자들은 "집 없는 것도 서러운데 제대로 고쳐주지도 않는다"며 토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생활형 숙박시설은 상품을 분양받은 집주인은 위탁운영사에 운영할 수 있는 권리를 양도합니다. 생활형 숙박시설에서 지내는 세입자들은 집주인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위탁운영사와 얘기하면 됩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들어서는 한 생활 숙박시설 전경. 사진=GS건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들어서는 한 생활 숙박시설 전경. 사진=GS건설
생활형 숙박시설에 장기로 투숙한 경험이 있는 한 수요자는 "집에 생긴 문제로 집주인과 날을 세우면서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 점은 정말 좋았다"며 "이런 점에선 전셋집, 월셋집, 더 나아가 장기 민간임대아파트보다도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세입자가 머물고 있고 싶은 만큼 있을 수 있다는 점도 좋습니다. 국내 부동산 시장에는 단기 임대 매물도, 수요도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나오는 단기 임대도 집주인이 요구하는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수요자보다는 공급자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장입니다.

한 위탁운영사 관계자는 "생활형 숙박시설은 '숙박시설'로 때문에 기본적으로 세입자가 머물고 싶은 만큼 계약을 할 수 있다. 하루 단위까지 선택이 가능하다"며 "중간에 계획이 바뀌어도 하루 단위 계약이기 때문에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다만 가격은 조금 고민이 필요할 수 있겠습니다. 언제 계약하는지, 얼마나 머무는지, 어떤 호실을 원하는지 등 수요자가 원하는 요구조건과 더불어 어느 지역에 있는 생활형 숙박시설인지, 어떤 운영사가 관리하는지에 따라 가격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통상적으로는 인근 월세 시세 대비 15~20%가량 더 비싼 수준에 책정된다고 합니다.

부동산 시장 관계자는 "전셋값이 급격하게 오르고 월세가 늘어나다 보니 실수요자들이 자연스레 월세를 택한 것처럼, 전세나 월세 물건이 부족해지면서 생활형 숙박시설을 찾는 수요가 생기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