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김 여사 분투기
난 국민학교 6학년 때 서울로 유학 왔다. 엄마는 지방에서 사업을 하셨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을 앞둔 즈음이었다. 담임선생님이 교문 앞에 가보란다. 엄마가 계셨다. 거의 1년 만에 엄마를 봤다. 엄마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었다. 손이 몹시도 찼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 있었지? 혹시 누가 엄마를 찾으면, 어디 있는지 모른다고 해.” 김 여사는 빚쟁이를 피해 다녔나 보다.

엄마는 멋지게 재기에 성공했다. 1t 트럭을 직접 몰고, 전국을 누볐다. 광주, 목포, 장흥을 하루 만에 다녀오셨다. 새벽 1시에 집에 들어오셨다. 삶은 양배추 쌈을 큼지막하게 싸서 늦은 저녁을 드셨다. 중학생인 나는 그냥 물끄러미 쳐다만 봤다. 두 해 전 병상에 계신 엄마와 당시 얘기를 나눴다.

“출장 가면 주무시고 오지 왜 그렇게 무리하셨어요?”

“여자가 잠을 어떻게 밖에서 자, 그리고 아버지 아침밥을 해줘야지, 네 도시락은 누가 싸.”

김 여사가 왜 늦은 저녁을 먹었는지 40여 년 만에 알게 됐다.

고등학교 때 내 도시락 반찬은 늘 김치였다. 처음으로 엄마에게 불만을 말했다. 엄마는 흠칫 놀라며 알았다고 대답하셨다. 다음날, 점심시간이 되자 기대감이 생겼다. 아뿔싸! 엄마의 선택은 깻잎 조림이었다. 그날 밤 엄마에게 항의했다. “깻잎은 맛있는데 짜니까 몇 장만 넣어주세요.”

다음날 점심시간, 난 반찬통을 열어보고 아연실색했다. 엄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반찬통은 고추장으로 가득했다. 고기를 갈아 넣은 볶은고추장도 아니고 그냥 빨간 고추장이었다. 친구들은 웃으면서 날 놀렸다. 점심을 포기하고 도시락을 다시 가방에 넣었다. 근데 가방 한구석에서 봉지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안에 상추가 가득 있었다. 김 여사는 아들 도시락 반찬도 챙기기 어려울 만큼 바빴다.

수능시험 날 아침 엄마는 시험 잘 보고 실컷 놀다 오라고 용돈까지 쥐여 주셨다. 시험을 마치고 난 곧장 엄마 공장으로 향했다. 지하에 있던 공장에서 아주머니 댓 명이랑 같이 일했다. 무거운 상자는 내가 날랐다. 시험 본 날이라고 엄마는 저녁으로 삼겹살을 구워 주셨다. 그렇게 한밤중까지 일했다. 김 여사의 흘린 땀을 알기에 난 놀 수 없었다.

이번 주가 여성기업 주간이다. 올해 처음으로 대통령을 모시고 성대한 행사도 치렀다. 전체 중소기업에서 여성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0%다. 식당을 하는 분도 있고, 반도체 회사를 운영하는 분도 있다. 지금, 이 순간 277만 명의 김 여사가 땀 흘려 일하고 계신다. 직원 월급을 책임지는 사장님으로 뛰어다니고, 한 남자의 아내로 셔츠 다림질을 걱정하고, 한 아이의 엄마로 학원 픽업도 가야 한다.

돌아가신 나의 어머니 김 여사님, 그리고 모든 김 여사님께 이 글을 바친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