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결과를 받아들이는 용기
우리는 어릴 때부터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늘 최고가 돼야 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나는 “때론 차선에 만족해야 할 때도 있다”고 가르치는 교수님을 만난 적이 있다. 이분은 미국 버클리음대 스페인 발렌시아캠퍼스에서 영화음악을 가르치는 교수님으로, 스페인에서는 유명한 영화음악 작곡가다.

발렌시아캠퍼스에는 1년짜리 영화음악 석사 과정이 있는데, 교수님에게 가장 중요한 레슨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의외로 거의 첫 한 학기 동안 학생들에게 ‘음악이 영화에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음악이 좋아서 음악가가 된, 특히 영화음악 전공자에게 이 사실을 받아들이게 하는 건 절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이 교수님 경험에 의하면 영화음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기한을 맞추는 것’과 ‘음악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대부분 영화에서 음악은 후반 작업 때 진행되기 때문에 많은 감독이 영화를 거의 완성한 상태에서 음악가에게 연락해 시간이 촉박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게다가 그때는 감독의 신경도 다소 날카로워지므로 음악가로서는 무조건 기일을 맞춰주는 것이 특히 중요해진다. 두 번째 중요한 요소는 바로 자신의 음악을 설명할 줄 아는 능력이다. 감독이 음악가를 만나는 후반 작업 시기는 삽입 음악에 대한 윤곽 역시 잡혀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감독 머릿속에는 이미 원하는 음악이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음악가에게는 자기의 음악에 대해 감독을 비롯한 영화 관계자들이 신뢰할 수 있도록 잘 표현하는 능력, 즉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음악가는 완벽하지 않더라도 차선책에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또한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감독이 이해할 수 있게 음악에 맞는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음악가에게는 음악이 가장 중요할지 몰라도 영화 전체로 볼 때는 “음악이 가장 중요치는 않다”는 사실부터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영화음악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최선을 찾다가 중요한 타이밍을 놓치기도 하고, 매일 있는 회의에서 적절한 표현을 찾다가 좋은 아이디어를 말할 기회를 잃어버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때로 100% 만족스럽지 않더라도 일단 시간에 맞춰 결정을 내려야 하고, 한번 내린 결정에 대해서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최선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 그런 과정이 하나둘 쌓였을 때 결국 최고가 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로 그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