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남철수 美기관사 "한국인 아무도 울지 않아"
72년 전 6·25전쟁 중에 벌어진 흥남철수작전에 맨 마지막으로 투입돼 사상 최대 구출 작전이라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이룬, 미국 화물선의 생존 기관사는 전쟁의 참상 속에서도 눈물을 흘리지 않았던 한국인들의 다부진 모습을 아직 잊지 못한다.

미국 상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3등 기관사로 흥남철수작전에 참여한 멀 스미스 씨(94·사진)는 최근 뉴욕주 자택에서 진행된 한국전쟁유업재단(이하 유업재단) 한종우 이사장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도 울지 않았다’는 말을 여섯 차례나 반복했다.

스미스 씨가 유업재단을 통해 최초로 공개한 당시 편지와 인터뷰 내용을 종합하면 그는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에 민간인 선원으로 참여하면서 6·25전쟁과 인연을 맺었다.

인천 상륙 후 서울까지 이동한 그는 “가는 길에 아이들을 많이 봤는데 아무도 울지 않더라.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 참혹한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한국인의 강인한 의지를 목격하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북진한 미군과 한국군이 중공군의 원산 점령으로 퇴로가 막히면서 고립되자 이들을 구하기 위한 흥남철수작전에 투입됐다.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그해 12월 22일 흥남철수작전에 193번째 선박으로 투입됐다.

당초엔 군 병력과 무기 등 군수품을 싣고 철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피란민이 몰려들자 배에 실려 있던 25만t의 군수물자를 바다에 버리고 1만4000명의 피란민을 대피시키는 사상 최대 구출 작전으로 임무가 바뀌었다. 그리고 메러디스 빅토리호는 흥남철수작전에 투입된 마지막 배가 됐다.

이틀간의 항해 끝에 경남 거제로 피란민들을 싣고 온 스미스 씨는 12월 25일 거제도에서 보낸 편지에서 “내가 살아있는 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라며 “우리가 실은 화물은 다름 아닌 1만4000명의 피란민이었다. 12월 22일에 그들을 싣고 23일 아침에 떠났다”고 설명했다. 철수 과정에서 희생자도 적지 않았다. 스미스 씨는 “죽은 아이들 다수는 부모들에 의해 바다로 던져졌다”고 말했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