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변화하는 강대국의 핵 정책과 한반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침공을 앞두고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시사했다. 핵 운용부대에 특별경계태세 강화도 지시했다. 지금까지도 핵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러시아가 실제로 핵무기를 사용할지는 불확실하다.

실제 사용 여부와는 별개로 공공연한 핵 사용 위협은 비확산체제를 약화시키고 기존 핵 질서를 동요시킬 것이다. 조짐은 벌써 나타나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25일 조선인민혁명군 창건 9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국가 근본이익 침탈 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말했다. 2017년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한 후 처음으로 핵 선제 사용의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이는 러시아의 핵 위협에 고무됐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일본·대만에서는 기존 핵 정책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 내 목표물을 공격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지원하고 있다. 러시아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핵무기 사용이나 사용 위협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은 금기시돼 왔다. 핵무기가 무차별적이고 불필요한 고통을 야기하는 전쟁 수단으로서 비례의 원칙을 위반하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 투하 이후 형성된 광범위한 비판 여론을 배경으로 핵보유국들은 개별 선언을 통해 비핵국가에 소극적인 안전보장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1982년 제2차 유엔 군축특별총회에서 소련은 ‘핵 선제 불사용 원칙(no first use)’을 선언했다. 그러나 소련을 승계한 러시아는 핵무기 사용 여지를 대폭 확대했다. 2020년 공개된 핵 독트린에서 러시아는 러시아 및 동맹국에 대한 탄도미사일 발사 징후, 대량살상무기 공격, 국가 및 군사시설에 대한 공격과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재래식무기 공격을 핵 사용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다. 러시아가 핵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는 이유다.

중국은 1964년 이후 핵 선제 불사용 원칙과 비핵국에 대한 핵 사용(위협)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핵전력을 대폭 확충하고 현대화하고 있는 중국이 대만과의 무력분쟁 시 기존 정책을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2022년 핵 태세 검토보고서(NPR)에서 미국, 동맹국과 파트너국의 ‘핵심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극단적 상황’에서만 핵무기 사용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공약인 핵 공격을 받을 경우에만 사용한다는 ‘단일 목적(sole purpose)’ 원칙을 폐기하고 선제적 사용과 재래식 전쟁에서의 핵 사용 정책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의 핵 위협은 한반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첫째, 북한으로 하여금 핵 무력 강화 결의를 다지게 할 것이다. 1994년 우크라이나는 부다페스트 양해각서를 통해 당시 세계 3위의 핵전력을 포기하는 대신 독립과 영토 존중, 핵무기 불사용을 러시아, 미국, 영국으로부터 약속받았다. 그러나 각서는 휴지 조각이 됐다. 이는 북한의 핵 보유 및 핵 능력 강화 의지를 확고히 해 비핵화 협상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둘째, 우크라이나 전쟁은 재래식 전쟁에서 핵보유국이 비핵국에 공공연하게 핵 위협을 한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동안 약 20차례나 핵 위협이 있었으나 모두 묵시적 위협이었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준비하고 있다. 실험을 통해 핵무기의 실전배치 등 강화된 핵 역량을 과시하고자 할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미·중 전략 경쟁과 미·러 갈등 속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역할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앞으로 더 빈번하고 노골적으로 핵 위협을 할 것이라는 점이다. 공포심을 유발하고 대응 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한 정보심리전의 일환으로 또는 정치적, 군사적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핵 위협 카드를 활용할 것이다. 다모클레스의 칼처럼 실존적 위협이 커지는 이때 정부가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대응전략을 수립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