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햄버거·새벽배송…푸드테크가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문정훈의 푸드로드]
‘푸드테크(food tech)’라는 단어가 언제부터인가 심심찮게 들린다. 그러나 푸드테크가 먹거리와 관련된 그 무엇이라는 것 말곤 실체가 무엇인지 학계에서도 명확히 정의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푸드테크협회에서는 푸드테크를 ‘전통 식품산업에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한 것’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 역시 최근 복잡하게 성장 중인 푸드테크의 다양한 흐름을 담지 못한다. 아무튼 인간은 매일 무언가를 먹고 있으며, 이러한 우리의 삶에 푸드테크는 이미 깊숙이 들어와 삶을 윤택하게 만들고 있다.

푸드테크란 무엇인가?

식품을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을 공급하고 배를 불리는 수단이라고 좁게 정의하고, 이런 전통적 의미의 식품 생산 및 제조를 식품산업이라고 규정해보자. 그렇다면 밀을 재배해서 밀가루를 제조하는 것은 식품산업이고, 이 밀가루로 맛있는 과자를 만드는 것도 식품산업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 과자에 특별한 기능을 넣어서 살이 덜 찌도록 하거나, 특별한 미생물을 활용해서 정말 특별한 맛의 과자를 만들어 낸다면 푸드테크 영역에 들어가는 것일까? 클릭 한 번으로 집에 있는 프린터기에서 과자가 출력돼 쏟아져 나온다면 ‘응, 이건 혁신적 푸드테크야’라며 대부분 동의하겠지만, 이 맛있는 과자를 제조할 때 밀가루가 단 1g도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기술이 적용된 것이라면? 이건 푸드테크일까 아닐까?

특정 기술이 푸드테크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보다는 식품산업이라는 큰 캔버스에 다양한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이 융합하며 ‘식품의 가치’를 끌어올리는지 여부가 더 중요해 보인다. 그리고 그 가치가 소비자와 사회가 바라는 먹거리 관련 다양한 니즈를 만족시키는 방향이고 결과적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준다면 그것이 푸드테크일 것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2022년 현재, 푸드테크가 어떻게 우리 일상생활에 스며들어 있는지, 또 푸드테크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살펴본다.

스마트팜이 식량 문제를 해결한다?

비건 햄버거·새벽배송…푸드테크가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문정훈의 푸드로드]
신선한 농산물을 공장에서 자동으로 찍어내는 것처럼 생산한다는 스마트팜이야말로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푸드테크 아이템이다. 그러나 스마트팜은 한계도 많고, 잘못 알려진 것도 많다. 가장 과장된 믿음은 ‘스마트팜은 도시의 식량 문제를 해결해주는 푸드테크’란 것이다. 현재 스마트팜 기술로 생산할 수 있는 작물은 대부분 엽채류이며 주식용 작물과는 거리가 멀다. 식량과 그나마 비슷한 건 토마토 정도다. 주식이 되는 식량 작물과 육류는 아직 스마트팜 영역 바깥에 있다. 그리고 자동화된 작물 생산도 여전히 거리가 멀다. 업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스마트팜에서 생산하는 작물의 원가에서 인건비 비중은 50%에 달한다. 자동과는 거리가 멀고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또 추울 때 난방하고 더울 때는 냉방을 해줘야 하는 등 에너지 비용 비중도 15%로 꽤 높다.

스마트팜의 가장 큰 강점은 인간이 제어하기 힘든 외부환경의 영향을 최소화해 생산 일수를 늘리고, 균질한 품질의 작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토양 없이 양액(養液) 재배를 하므로 농약을 쓸 일이 거의 없고, 작업대 높이와 형태를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할 수 있어 작업자들이 상대적으로 더 안전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노동할 수 있다. 그러나 품질의 균질성이 반드시 고품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양액 기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면 맹맹한 맛의 토마토와 푸석거리는 양상추가 나오기도 한다. 뜨거운 태양과 빗물, 토양, 미생물이 빚어내는 자연의 마법을 아직 인간의 기술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농산물의 재배 품질 문제는 식물 영양학 및 생리학의 영역임에도 지금까지 국내 스마트팜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는 주로 IT와 시설 쪽으로 쏠려 있었다. 스마트팜 관련 첨단 푸드테크의 진보는 반드시 재배 전문인력 양성과 함께 연계해 나가야 달성할 수 있다.

새로운 단백질 섭취원을 모색하는 푸드테크

육류 단백질 중심의 칼로리 섭취가 일상이 된 요즘,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푸드테크는 스마트팜보다 오히려 육류 단백질 대체 기술이 더 가까워 보인다. 현행 육류 단백질을 생산하는 축산 방식에는 상당한 환경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푸드테크 스타트업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노력하고 있는 대체 단백질 기술은 크게 서너 가지 정도로 요약된다.
 그래픽=신택수 기자
그래픽=신택수 기자
먼저 ‘지속가능하고 저렴하며 질 좋은 대체 단백질 소재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에서 출발해서 ‘어떻게 하면 이런 대체 단백질 소재를 활용해 고기, 우유와 비슷한 맛을 낼 수 있을까?’로 이어지는 대체육 관련 푸드테크의 흐름이 있다. 식물성 대체육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외국의 식물성 대체육 스타트업들이 주로 햄버거 패티 등에 활용할 수 있는 간 고기 형태의 대체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국내 스타트업인 ‘지구인 컴퍼니’의 기술적 방향은 마블링과 힘줄까지 구현하는 구이용 덩어리 고기 개발 쪽으로 상당한 기술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풀무원은 핵심 역량을 확보하고 있는 두부의 식감과 맛을 조정해 대체육 원료로 활용, 너겟 등의 제품을 출시했다.

글로벌 시장 규모로 봤을 때 현재 대체 단백질 시장의 규모는 대체육보다 대체유(乳) 시장이 더 크고 대체의 임팩트가 만만찮다. 특히 유럽에서는 수년 전부터 식물성 대체유를 활용해 기존의 우유, 요거트, 치즈를 대체하는 제품이 활발하게 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두유를 섭취해 왔기 때문에 이런 글로벌 트렌드가 체감되지 않을 뿐이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는 대두를 비롯해 오트, 쌀, 코코넛, 견과류 등의 다양한 식물성 소재를 활용한 대체 유제품류가 많이 출시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적정 비용으로 우유와 요거트의 식감과 맛을 비슷하게 낼 것인가가 기술적 관건이다. 국내에서는 풀무원다논이 코코넛을 활용한 식물성 요거트를 출시했다.

한국에선 이와 관련해 새로운 변화가 일고 있다. 라테 커피에 들어가는 우유를 대체할 식물성 대체유를 찾는 것이다. 우리가 섭취해 온 두유 특유의 고소한 맛은 커피와 섞었을 때 어울리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연구개발이 활발하다. 작년 한 해 국내 스타벅스에서 오트 라테 커피가 크게 인기를 얻었으며, 이후 식물성 라테 커피 시장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어떤 식물성 대체유가 커피 맛을 더 끌어올리며 우유를 대체할 수 있을까? 매일유업 등 유기업에서 관련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이와 별도로 가축의 줄기세포를 배양해 사료 급이와 도축 행위 없이 살코기를 만들어 내는 배양육 관련 푸드테크도 최근 급부상하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 이미 제품으로 출시됐으나, 아직 생산 단가가 높아 배양육 생산 수율을 올릴 수 있는 공정 기술 연구개발이 한참 진행 중이다. 배양육 관련 푸드테크는 서울대 농생대, 세종대 등 대학과 스타트업의 공동 연구를 통해 주로 개발되고 있으며 CJ 등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투자해 시너지를 내고 있다. 지난 3월 국내에서도 시제품이 출시돼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현재의 배양육은 실제 가축의 살코기가 갖는 풍미와 식감, 영양적 이점을 아직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 기술이 완성되고, 제도적 보완과 소비자의 인식 문제가 해결된다면 공장에서 고기를 생산하면서 가축의 희생을 줄이고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데 좀 더 다가서게 될 것이다. 반면에 곤충 단백질 관련 푸드테크는 소비자들의 거부감과 가공 방식의 한계로 최근 어류와 반려동물 사료 쪽으로 활용성을 확장하고 있다.

K푸드테크의 정수, 새벽배송

새벽배송이 왜 푸드테크냐고 묻는다면, 새벽배송이야말로 현재 생활 속에 깊숙이 들어와 우리의 식생활을 드라마틱하게 바꾸고 있는, ‘빨리빨리’ 민족에 특화된 IT 기반 푸드테크로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로봇 기술의 총집합체라고 할 수 있다. 소비자에게 새벽배송은 단지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밤사이 빠르게 배송해주는 노동 집약적 서비스로 느껴지겠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이 존재한다.

흔히 오픈마켓이라고 불리는 온라인 쇼핑몰은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역할만 한다. 그러니 따로 물류센터, 물류망, 배송 차량 등에 대한 인프라 투자가 필요치 않다. 쇼핑몰에서 거래가 일어나면 판매자는 소비자에게 자신의 상품을 택배 배송하고, 쇼핑몰은 판매 수수료를 받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반면, 새벽배송 쇼핑몰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매일 전 품목에 대한 판매 예측을 하고 상품을 공급사들로부터 매입해 자체 물류센터로 공급받는다. 그리고 늦은 밤 주문 마감 후 AI를 활용해 물류센터에서 빠르게 장바구니를 꾸려 새벽에 배송한다. 쿠팡의 첨단 물류센터에서는 고객의 주문이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되도록 수많은 로봇이 재고를 최적의 동선으로 옮기고 있다. 그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으면 미래의 도시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빅데이터 분석과 AI가 제대로 작동하면 상품을 배송하고 난 물류센터는 원칙적으로 텅 비어 있어야 한다. 이 예측이 틀리게 되면 물류센터는 재고로 가득 차 있게 되고, 물류센터 면적과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특히 신선식품의 품질은 급격히 떨어져 재고 손실이 커지고, 고객에게 싱싱하지 않은 상품을 판매하게 되니 만족도도 낮아질 것이다. 새벽배송 쇼핑몰 마켓컬리는 단 네 개의 물류센터로만 2021년 1조6000억원의 매출을 냈다. 빅데이터 분석과 AI가 만들어낸 최적화의 놀라운 성과다.

지난 2년간 새벽배송 푸드테크라는 비대면 무기를 장착한 대한민국은 그 누구보다도 유리한 고지에서 코로나와 싸울 수 있었고,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맞벌이 주부들에겐 온도에 예민한 신선식품을 냉장고에 넣고 출근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점에서 여성의 역할 과중을 줄여주는 강력한 도우미였다. 앞으로 새벽배송 물류대행 풀필먼트 업체가 늘어나 더 많은 도우미들을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새벽배송 쇼핑몰과 생산자 간의 긴밀한 협업은 농산물 품질을 혁신적으로 개선하기도 했다. 오프라인 매대에서 팔리는 과일 등 다수의 신선식품은 완숙된 상태에서 수확, 유통되는 것이 아니라 70% 정도 익은 것을 수확해 매대 위에서 후숙하며 판매된다. 이렇게 해야 과육이 물러지지 않고 매대에서 오래 유지되기 때문인데, 안타깝게도 미숙 상태에서 수확되므로 그 열매가 가져야 할 온전한 맛과 향을 다 품기 어렵다. 그런데 새벽배송 푸드테크가 이 관행을 바꾸기 시작했다.

강원 화천에 있는 토마토 농장 안스퓨어팜은 마켓컬리와 협업하며 매일 아침 농장에서 수확한 토마토가 새벽배송으로 최종 소비자의 문 앞까지 배송되는 데까지 24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했다. 이에 기존의 70% 정도 익은 미숙 토마토를 수확하는 관행을 없애고 줄기에서 완숙된 토마토만 수확해서 매일 납품하는 새로운 원칙을 수립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예전에 느끼기 힘들었던 농후하고 풍부한 맛과 향의 토마토를 즐길 수 있게 됐다. 새벽배송 푸드테크가 신선식품 품질의 혁신적 개선을 유도한 것이다. 모든 품목이 다 이렇게 바뀐 건 아니지만 새벽배송 푸드테크는 조용히, 서서히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입맛을 세계 최고급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무한히 확장하고 진화하는 푸드테크의 세계

비건 햄버거·새벽배송…푸드테크가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문정훈의 푸드로드]
푸드테크는 이미 우리 생활 속에 있다. 특히 IT에 기반해 편의성의 가치를 제공하는 한국적인 푸드테크는 그 어떤 국가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음식 배달 플랫폼, 주류 스마트 오더, 퀵 커머스 등이 그것이다. 마이크로바이오옴(Microbiome) 관련 푸드테크는 음식 섭취와 장내 미생물, 그리고 건강 및 질병과의 관계에 대한 분야로 식품·의약학 기업들의 초미의 관심사다. CJ는 지난해 천종식 서울대 교수 연구실 스타트업인 ‘천랩’을 983억원에 인수해 CJ바이오사이언스로 변모시켰고, 앱 피비오(Pibio)는 사용자의 음식 섭취와 장내 미생물 환경의 개선을 관리·추적하는 도구로 추후 다양한 건강기능식품 및 의약품 개발과 연계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푸드테크 사례는 너무나 다양하다.

먹는 행동은 몸에 에너지를 공급하며 생명을 유지하는 행위이자 동시에 즐거움과 행복감을 얻는 행위다. 인간의 생사, 희로애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푸드테크는 무한한 확장성이 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푸드테크는 우리 생활의 일부로 함께 진화하고 있을 것이다.

■ 문정훈은

비건 햄버거·새벽배송…푸드테크가 우리 삶을 바꾸고 있다 [문정훈의 푸드로드]
KAIST 경영과학과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로 푸드비즈니스랩을 이끌고 있다. 푸드비즈니스랩은 더 잘 먹고, 잘 마시고, 잘 노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이 모여 흥미로운 작당을 하는 곳으로, 농식품의 가치를 발굴하고 상품화해 소비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먹거리에 세련되고 까다로운 소비자가 이 세상을 구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연다는 믿음 아래 끊임없이 소비자와 소통한다. 자신의 취향을 모르거나 주는 대로 먹는 소비자들이 자기 주도적 소비를 하도록 도움으로써 획일화된 농식품 산업의 관행을 깨뜨리고 다양성의 세계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