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감정가가 다시금 도마에 오르고 있다. 경매감정가의 신뢰성 문제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지만 최근 같은 단지내 같은 면적의 아파트 감정평가액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큰 차이가 나면서 더욱 논란의 중심이 됐다.

논란의 주인공은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월드컵아이파크 23평형. 이 아파트 104동 1802호는 지난해 12월 1일에, 같은 동 602호는 2개월 후인 2월 9일에 처음 경매시장에 나온 적이 있다.

문제는 이 아파트의 감정평가액. 같은 단지는 물론 같은 동에 있는 아파트이면서도 1802호의 감정평가액이 4억원이었던 반면 602호는 2억7천만원으로 감정평가됐다. 두 아파트의 감정평가액 차이는 무려 1억3천만원.

대형평형의 경우 층과 향, 조망권 등에 따라 1억원 이상의 시세나 감정가 차이가 나는 경우가 종종 있으나 전용면적 60㎡ 내외의 소형아파트에 1억원이 넘는 가격차는 매우 이례적이다. 그렇다고 1802호가 602보다 조망권이 월등히 우월한 것도 아니고, 도로ㆍ교통, 단지규모 등 제반 여건으로 보아 그 차이를 납득할 만한 요인이 하나도 없었다.

감정평가가 상당한 기간차를 두고 이루어졌는지도 살펴봤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경매물건도 일반매물과 같이 시장여건이 반영되기 때문에 같은 단지나 동, 층, 향, 조망권 등 제반여건이 같다고 하더라도 감정평가시점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는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두 물건의 감정평가시점의 차이는 불과 한달이 채 안됐다. 1802호는 지난해 9월 25일에, 602호는 지난해 10월 15일에 감정됐다. 지난해 9월이면 주택가격 상승으로 시장이 불안해지자 DTI규제를 강남권에서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하고, 그래도 가격이 수그러들지 않자 10월에는 제2금융권까지 확대했던 시점이다.

비록 그간의 규제완화 기조에서 탈피하여 부동산 규제로 선회되기는 했지만 부동산 규제로 인해 시장이 즉각 반응한 것도 아니었고, 특히 DTI규제는 소형아파트보다는 중대형아파트에 영향이 컸다. 감정평가업체가 서로 달라 일정 부분 주관성을 가미하더라도 감정기준조차 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억3천만원의 격차는 분명 감정평가 오류다.

서두에서 언급했듯 감정평가 오류는 비단 어제 오늘만의 얘기는 아니다. 가격에 대한 오류에서부터 시작해, 평가면적에 대한 오류, 위치에 대한 오류, 수량에 대한 오류 등 그 사례도 각양각색이다.

이 중에서 입찰자들이 가장 빈번하게 맞닥뜨려지는 문제는 바로 감정평가액과 입찰시점의 현 시세와의 괴리다. 감정평가액을 시세로 맹신하고 입찰하는 것도 문제지만 현 시세와 동떨어진 감정평가액을 그대로 적용해 매각하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감정평가액과 시세간의 괴리가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감정평가시점에 있다. 즉 경매를 위한 감정평가는 대개 첫 매각기일(입찰일)에 앞서 3~4개월 전(물건에 따라서는 5~6개월 전)에 이루어지게 된다.

입찰이 이루어지는 현 시점의 부동산시장과 감정평가가 이루어지는 3~4개월(또는 5~6개월) 전의 부동산시장이 큰 변동이 없는 상황이라면 감정 당시의 감정평가액과 입찰시점의 현 시세간 별 차이가 없다. 반면 감정평가시점에는 부동산시장이 좋았는데 이후 시장상황이 악화됐다면 현 시세에 비해 감정평가액이 높을 수밖에 없고, 이와 반대로 감정평가시점에는 시장이 침체됐는데 이후 시장이 회복기에 접어들었다면 현 시세가 감정평가액보다 높게 나타난다.

요즈음의 부동산시장은 침체기로 주택가격이 연일 하락하고 있는 시점이다. 따라서 이보다 수개월 앞서 감정평가된 경매물건이라면 아무래도 현 시세보다 높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이는 수치상으로도 분명히 나타난다. 지난 2월말 기준 서울소재 아파트의 건당 매매평균가는 5억8천9백19만원. 반면 같은 달 경매에 부쳐진 서울소재 아파트의 평균 감정평가액은 6억5천2백69만원으로 매매평균가 대비 110.8% 수준이었으나, 1개월이 지난 3월 매매평균가는 5억8천8백51만원으로 떨어진 반면 경매감정가는 6억7천2백12만원으로 오히려 더 상승했다. 매매평균가 대비 감정평가액 비율이 110.8%에서 114.2%로 3.4%p 더 벌어진 셈이다.

예컨대 현 시세는 1억원인 아파트가 경매시장에서는 1억1천4백20만원에 경매에 부쳐지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입찰자 입장에서는 한번 유찰(최저경매가 9천1백36만원)되기를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고 2회 유찰되고 나서야 비로소 입찰(최저경매가 7천3백9만원)여부를 판단하는 것 바람직하다. 1회 유찰된 시점에 최저가인 9천3백36만원에 낙찰된다고 해도 취ㆍ등록세, 법무비용, 명도비용 등 제반비용을 고려하면 시세(1억원)에 버금가거나 그 이상을 주고 낙찰받는 결과가 된다.

시장이 급속히 위축될수록 현 시세보다 경매를 위한 감정평가액이 훨씬 높게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입찰자의 정확한 시세판단이 더욱 요구되는 사안이다. 앞으로가 바로 그런 시점이다.

감정평가액과 현 시세간 격차를 줄일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은 없다. 경매를 진행하는 각 법원의 경매물건이 한 두건이 아니고 해당 경매계마다 수십건 이상씩 물건이 할당돼 일괄하여 경매를 진행하다보면 경매진행 일정상 매각기일(입찰일)에 임박해 감정평가를 실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경매신청이 들어온 후 곧장 감정평가를 의뢰할 것이 아니라 경매를 위한 다른 준비는 다 해놓되 감정평가만은 매각공고(매각기일 2주전) 일정을 감안하여 매각기일 1개월~2개월 전에 실시한다면 감정평가액과 시세간 격차를 최소화하지 않을까 한다.

또한 위 사례에서 문제됐던 것처럼 감정평가 주체의 정성어린(?) 감정평가가 선행돼야 함은 당연지사. 어쨌거나 경매시장의 바람직한 인식전환이나 입찰자들을 위해서도 감정평가 시스템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닥터아파트(www.drapt.com) 이영진 리서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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