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영향평가·프랑스 사전규범통제·미국 상하원협의회 등
전문가들 "부실·졸속법안 걸러내야…사후영향분석도 필요"
[검수완박 후폭풍] ③ 외국은 '위헌' 필터링·법안 영향 평가 (끝)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 중 하나인 검찰청법 개정안이 위헌 논란 속에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되면서 이번을 계기로 국회 입법 절차를 전반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입법권자인 국회의 재량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법안의 위헌 가능성을 미리 걸러내고 사후 평가를 통해 법률을 수정·보완하는 제도적인 환경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3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외국의 주요 국가에서는 법안의 긍정·부정 영향을 사전에 분석해 입법과정에 충실히 반영하고 위헌 여부도 법 시행 전에 심사하는 제도가 활성화돼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도 법안의 사전·사후 평가제도가 도입된다면 국회가 더 정확하고 냉정하게 법안을 심사하고 상대 진영과 토론하고 대화하는 문화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검수완박 후폭풍] ③ 외국은 '위헌' 필터링·법안 영향 평가 (끝)
◇ 英 '영향평가'·佛 '사전규범통제'·美 '상·하원 협의'
2020년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주요국 사전 입법영향분석 제도'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은 2007년부터 '영향 평가'를 도입해 정부 제출안과 의원 발의안 모두 사전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

법률 신설이나 강화·폐지 모든 경우에 적용된다.

평가는 해당 법률 소관부처에서 진행하며 이후 규제정책위원회가 각 부처의 영향평가서가 정확히 작성됐는지 심의하고 법률에 따른 편익과 비용 추정을 검증하게 된다.

작성된 영향평가서는 의원들이 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기초자료로 활용되며 의회 심사과정에서 법안 수정이 이뤄질 경우 정부는 영향평가서를 수정해 다시 의회로 송부해야 한다.

2008년부터 2020년 9월까지 총 4천300개의 영향평가서가 발간된 것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제출 법률안에 대해서는 각종 영향평가와 규제심사를 거치도록 하지만, 정작 평가서들이 국회에는 제출되지 않는 데다가 의원 발의안이 수적으로 정부 제출안을 압도하기 때문에 그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검수완박 후폭풍] ③ 외국은 '위헌' 필터링·법안 영향 평가 (끝)
한편 프랑스는 일부 법률에 대해서는 법 시행 전에 헌법재판소의 심사를 거쳐 공포되도록 하는 '사전적 규범통제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조직법률은 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을 받아야만 비로소 공포가 가능하며, 의회 규칙도 헌재 심사가 선행돼야 시행이 가능하다.

국민투표에 부치려는 법안들도 심사를 거쳐야 한다.

다른 법안들도 대통령, 총리, 양원의장, 60인의 상·하원의원 등의 청구가 있는 경우 헌재 심사를 거칠 수 있도록 했다.

원칙적으로 헌재가 한 달 안에 결정을 내려야 하지만 긴급한 경우 8일로 단축이 가능하다.

또 의회가 두 개의 의원으로 구성돼있는 양원제 국가들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단원제 국가보다 비교적 숙의 문화가 잘 정착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법안이 차례로 양원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에서 특정 정당이 일방적으로 의사결정을 관철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상·하원의 의결 내용이 서로 다른 경우 상·하원 협의회에 법안이 회부돼 조정 및 승인 절차를 거치도록 하는데,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법안이 결국 의회를 통과하지 못한다.

프랑스는 법안이 제1원에서 의결된 뒤 제2원으로 전달되고 그로부터 4주가 지난 후에 제2원의 법안 심의가 시작된다.

만약 제2원에서 법안이 수정 의결되면 제1원으로 다시 돌아가 수정 내용에 대한 심의를 받아야 하는 '법안 왕복 심의' 절차도 있다.

[검수완박 후폭풍] ③ 외국은 '위헌' 필터링·법안 영향 평가 (끝)
◇ 전문가들 "사전·사후평가로 입법의 질 높여야"
한국입법학회 회장을 지낸 홍완식 건국대 교수는 "21대 국회 들어 제출된 법안 건수가 1만5천여건이다.

뭐가 좋고 나쁜 법안인지 옥석을 가리기 힘들어진다"며 "위헌성을 미리 체크하고 과도한 규제, 부실·졸속·표절 법안을 걸러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사전 법안 심사제도를 둔다면 무리수를 두거나 졸속으로 법안을 처리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해진다"며 "심사를 거치는 동안 정당들이 자연스럽게 냉각기를 가질 수 있게 되고 좀 더 합리적이고 정상적인 법안이 나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회는 입법권에 대한 침해라며 반대할 수 있겠지만, 최근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에 대한 절제와 통제도 하려 하는데 국회의원들만 입법권이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주장을 외면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장을 역임한 이내영 고려대 교수는 "법을 만들어놓은 뒤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결과와 부작용을 가져오는지 평가를 하는 곳이 없다"며 "입법조사처에서 사후입법영향 분석을 일부 하고 있지만 제도화돼있지는 않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더 중요한 것은 법의 부작용과 불필요성을 검토하는 사전영향평가다.

별도의 과나 실 단위를 만들어 담당해야 한다"면서 "선거를 통해 나라의 정책 방향과 우선순위가 바뀌었다면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이 입법인 만큼 그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검수완박 후폭풍] ③ 외국은 '위헌' 필터링·법안 영향 평가 (끝)
한국헌법학회 부회장을 지낸 이호선 국민대 교수는 "국회의원 일정 수 이상이 요구하면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그 발효 시점을 국민에게 물어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가 세계 각국에 있다"며 "입법부가 대의기관으로서 숙려하는 역할을 다하지 못하거나 정파적으로 신중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입법권의 남용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며 "그 대안으로 입법 일몰제를 둘 수 있다.

한시적으로 (시행)하다가 국회가 그 법의 타당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법이 자동으로 실효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헌법학회장을 지낸 문재완 한국외대 교수는 "국회에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느냐의 문제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헌법재판관들이 (사전에 위헌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것도 타당한 방법은 아니다"라며 "소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과대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글 싣는 순서]
① 다수의 입법은 절대선일까…무너진 의회주의
② 일사천리 추진 윤창호법…결국 헌재로
③ 외국은 '위헌' 필터링·법안 영향평가 (끝)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