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슬럼프 깨고 대표 선발전 1위…"철인소녀 아닌 성숙한 정혜림의 모습"
'3회 연속 AG행' 정혜림 "항저우 개인전·릴레이 메달 도전"
정혜림(23·전북철인3종협회)은 지난 24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트라이애슬론 대표 선발전 4차 레이스에서 파란색 카펫이 깔린 결승선을 통과한 뒤 울음을 터트렸다.

"최근 4년 동안 1위로 결승 테이프를 끊은 게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그만큼 슬럼프가 길었습니다.

휴가 반납해가면서 선발전을 준비했는데, 결과가 나오니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
길고 지독했던 슬럼프에서 벗어난 정혜림은 한국 여자 트라이애슬론 사상 처음으로 3회 연속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확보하는 새 역사를 썼다.

그는 더 큰 꿈을 꾼다.

정혜림은 26일 연합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개인전과 혼성 릴레이 모두 메달에 도전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정혜림은 지난 4일부터 24일까지 경상남도 고성군 해양마리나에서 총 4차례 펼친 최종 선발전에서 여자부 합계 1위에 올랐다.

24일 열린 4차 선발전 스프린트(수영 750m·사이클 20㎞·달리기 5㎞) 경기에서 정혜림은 1시간05분35초로 1위에 올랐다.

슈퍼스프린트(수영 300m·사이클 8㎞·달리기 1.6㎞)로 벌인 1차 레이스에서 3위를 한 정혜림은 같은 코스의 2차 레이스에서는 1위에 올랐다.

스탠다드(수영 1.5㎞·사이클 40㎞·달리기 10㎞)로 치른 3차 레이스에서 2위에 오른 정혜림은 마지막 4차 레이스에서 1위를 하며 '합계 1위'로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인전과 혼성 릴레이 출전권을 손에 넣었다.

합계 2위 박예진(22·통영시청)도 개인전, 혼성 릴레이 출전한다.

3위에 오른 실업 1년 차 박가연(19·대전시청)은 혼성 릴레이 예비 멤버로 대표팀에 합류한다.

대표팀의 맏언니가 된 정혜림은 "시간이 정말 많이 흘렀다"고 웃었다.

'3회 연속 AG행' 정혜림 "항저우 개인전·릴레이 메달 도전"
8년 전, 2014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중학교 3학년'이던 정혜림은 혼성 릴레이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나이 제한 때문에 개인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당시 한국 트라이애슬론의 최고 스타도 정혜림이었다.

2013년 2월 트라이애슬론에 입문한 정혜림은 5개월 만인 2013년 7월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을 차지해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2015년과 2016년 아시아 선수권 주니어부 2연패를 달성하고, 2016년 세계선수권 주니어부에서는 한국 최초로 동메달을 수확했다.

하지만, 시니어 무대에 들어선 뒤 정혜림은 국내 무대에서도 고전했다.

그는 "시니어 무대에 올라갈 때부터 내 체형이 달라졌다.

급격하게 골격이 커지고, 살도 붙으면서 '성인 정혜림'의 몸을 내가 따라가지 못했다"며 "정말 모든 노력을 해봤는데 기록은 나오지 않고, 부상도 자주 당했다"고 곱씹었다.

'3회 연속 AG행' 정혜림 "항저우 개인전·릴레이 메달 도전"
정혜림은 "힘겹게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땄는데, 개인전에서 부상을 당하고 혼성 릴레이에는 출전하지도 못했다"며 "2018 아시안게임이 끝난 뒤,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다.

성인이 된 내 몸에 적응하는 데 4년이 걸렸다"고 지난 4년을 돌아봤다.

부상에서도 벗어나고, 훈련 성과도 좋았지만 대표 선발전을 치르는 내내 정혜림은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는 "훈련 성과는 참 좋았는데, 1∼3차 레이스에서 기대한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4차 레이스에서 밀리면 항저우 대표팀에 뽑히지 못할 수도 있었다"며 "휴가도 반납하면서 목숨 걸고 준비했는데, 다행히 4차 레이스에서 1위를 하면서 합계 1위를 차지했다.

(결승선 100m 앞) 블루 카펫에 진입한 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안도감에서 나온 눈물이었다"라고 털어놨다.

'3회 연속 AG행' 정혜림 "항저우 개인전·릴레이 메달 도전"
땀과 눈물로 얻은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권을 손에 쥔 뒤, 정혜림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그는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정말 열심히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겠다.

개인전(수영 1.5㎞·사이클 40㎞·달리기 10㎞)에서 메달을 따면 더 짧은 거리의 혼성 릴레이(4명이 수영 300m·사이클 6.3㎞·달리기 2.1㎞씩 소화하는 경기)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며 "수영 기록을 더 끌어 올리고, 근력을 강화해서 사이클 기록도 단축하겠다"고 개인전 메달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도 세웠다.

'3회 연속 AG행' 정혜림 "항저우 개인전·릴레이 메달 도전"
한국은 2006년 도하 대회부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 된 트라이애슬론에서 은메달 2개와 동메달 1개를 수확했다.

2014 인천,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혼성 릴레이에서 연속 은메달을 땄고, 2006년 광저우에서는 장윤정이 여자 개인전 동메달을 획득했다.

정혜림은 한국 트라이애슬론 새 역사를 노린다.

정혜림은 "인천 대회는 어릴 때 치러서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는 아쉬움만 남았다"며 "많은 분의 기억 속에 나는 '중학교 3학년 철인 소녀'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통해 '성장한 정혜림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꼭 개인전과 혼성 릴레이 두 종목 모두 메달을 따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11월 2022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은퇴식을 치른 허민호(32)의 모습은 정혜림에게 좋은 자극이 됐다.

허민호는 한국 트라이애슬론 사상 최초로 올림픽 본선 무대(2012년 런던)에 올랐고, 2014년 인천과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혼성 릴레이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정혜림은 "허민호 선배는 한국 트라이애슬론의 역사였다.

선배와 함께 대표팀에서 뛰면서 많이 배웠다"며 "나도 훗날 '한국 트라이애슬론의 역사를 세운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

2022년이 한국 트라이애슬론과 정혜림에게 의미 있는 해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