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 앞두고 인수위에 집중적 요구…공은 정치권으로
장애인 향한 무관심에 지하철 시위…예산 3조원 편성 쟁점
장애인 권리예산 확충 등을 주장해온 전국장애인철폐연대(전장연)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측 답변이 부실하다며 22일 만에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재개했다.

전장연은 올 초부터 진행한 이 시위 방식이 사회적으로 장애인 이동권 등을 부각하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회적 갈등과 비용도 만만치 않게 발생하면서 정치권 차원의 해법이 필요한 상황이 됐다.

◇ 왜 지하철 시위…되풀이되는 사고에 문제 제기
장애인 이동권 보장 투쟁은 2001년 설에 역귀성한 장애인 노부부가 지하철 오이도역에서 장애인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사한 사건을 계기로 촉발됐다.

장애인들은 '장애인이동권연대'를 결성해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 특별교통수단 도입 등을 요구하며 지하철로와 버스를 점거했다.

이듬해 발산역에서 같은 참사가 재발하자 장애인들은 국가인권위원회 건물을 점거하고 39일간 단식 농성을 벌인 끝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에게 2004년까지 모든 지하철에 승강기 설치와 저상버스 도입 등을 약속받았다.

전장연은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정치권이 이동권 보장 계획을 내놓지만 예산 편성 등 후속 조치는 없었다고 비판한다.

이번 지하철 시위로 인한 시민 불편을 알고 있지만 관심 환기에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 불가피하다는 속사정도 있다.

이전에도 탈시설·부양의무제 폐지, 장애등급제 폐지 등 다양한 의제를 내걸고 여러 방식으로 시위를 해왔지만 이번처럼 관심을 끈 적은 없었다.

김필순 전장연 기획실장은 "이전에도 우리는 꾸준히 시위를 해왔지만, 지금은 불편 때문에 시민들이 관심을 두는 것 아니겠느냐"며 "출퇴근 시간에 장애인이 지하철을 타면 안 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매년 명절 장애인도 고속버스, 시외버스 타고 고향에 가고 싶다고 시위를 해왔는데 그때는 버스표 끊는 사람이 소수라 관심을 못 받았다"며 "그 결과 5∼6년 투쟁했지만, 현재 휠체어 탑승 가능한 시외·고속버스는 전국에 고작 7대에 불과하다"고 했다.

임운택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해외에서도 휴가철 사람이 제일 몰리는 부활절이나 크리스마스에 철도·지하철 운수 파업이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며 "이처럼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는 단기간 사람들에게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문제를 환기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평가했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도 "사회 운동을 궤도에 올리고 성공시키려면 돈, 사람, 시간이 필요한데 전장연은 이런 자원이 부족한데다가 사람들이 관심도 두지 않다 보니 출퇴근 시간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엇이 문제인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했다.

출퇴근 지하철 시위 현장을 관리·통제하는 경찰도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으나,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의 시위를 관리하는 데 다소 부담을 느끼고 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건국 이래 장애인 문제에 이렇게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느냐"며 "사회 문제를 넘어 정치 현안이 돼버렸기 때문에 단순히 불법을 해소하는 차원에서 간단히 풀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했다.

서울의 한 일선서 관계자도 "법에 따라 집회시위를 관리하고 있지만, 열차 운행을 위해서 휠체어에 탄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을 끌어내는 모습이 자칫하면 인권 침해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부담이 되고 더 위축되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장애인 향한 무관심에 지하철 시위…예산 3조원 편성 쟁점
◇ '이동권 보장' 예산 요구안 핵심은…탈시설·활동 지원 3조원
전장연은 장애인 권리 증진을 위해 줄곧 관련 예산 반영을 주장해왔지만 그 외에 정치적 메시지도 꾸준히 내왔다.

주한미군 철수와 이석기 전 의원 석방 등이 대표적이다.

그렇게 활동 영역을 넓혀온 전장연은 문재인 정부 임기 말로 접어든 올해 1월부터 '이동권 보장'을 내세워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를 시작했다.

전장연은 대선 후 정권 교체가 예고되면서 한층 투쟁 수위를 높였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논의의 물꼬도 텄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장애인 권리 예산은 크게 탈시설 자립지원 시범사업 예산 807억원, 장애인활동지원 예산 2조9천억원,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을 통한 이동권 예산 제도 개선으로 요약된다.

먼저 탈시설 자립지원 시범사업 예산은 올해 21억5천만원으로, 전장연의 요구안은 이보다 약 37배 많은 수준이다.

전장연은 장애인의 탈시설화와 지역사회 정착은 초기에 안정적인 예산을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면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1년 이상 거주한 장애인이 탈시설할 경우 별도 소득 기준없이 자립정착금을 지자체 매칭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애인활동지원 예산은 일상생활과 사회활동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지원급여를 제공, 자립생활 지원을 확대하고 가족의 돌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것으로 생존권과 직결돼 있다는 게 전장연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이동권 예산과 관련해선 보조금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장애인특별운송사업을 국가보조금 사업으로 변경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기준보조율은 서울 50%, 지방 70%로 반영해달라고도 촉구했다.

이동권과 관련해서는 특별교통수단 이용 등록 시스템 일원화, 광역단위 이동과 24시간 이용 보장, 휠체어 이용자와 비휠체어 이용자 구분 등도 주장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