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까지 머문 겨울철새 먹이활동으로 16만평 중 7만평 황폐화
풍부한 먹이에 서식기간 늘어…"두 동식물 공존 방법 찾아야"
[르포] '전국 최대' 대저생태공원 유채꽃밭 절반이 사라졌다
"유채꽃밭 규모가 이렇게나 줄어든 것은 10년 만에 처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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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한창인 7일 오후 부산 강서구 대저생태공원.
국내 최대 유채꽃 군락지로 알려진 이곳은 매년 4월이면 약 16만평에 달하는 유채꽃밭이 황금빛으로 상춘객을 유혹한다.

노란 물감을 흩뿌리듯 만개한 유채꽃은 부산시민뿐 아니라 다른 지역 관광객에게도 유명한 곳이다.

[르포] '전국 최대' 대저생태공원 유채꽃밭 절반이 사라졌다
하지만 올해는 빼곡히 자란 유채꽃으로 황금빛 물결을 이뤄야 할 꽃밭 중 상당 부분이 황폐한 들판으로 변했다.

마른 흙을 드러낸 채 훼손된 꽃밭에는 손으로 꼽을 만큼 적은 양의 유채꽃이 기껏해야 발목 높이로만 자라 예전의 화려함을 잃었다.

성인의 허리를 넘어설 정도로 길고 꼿꼿이 자란 다른 구역의 유채꽃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황무지를 연상케 하는 이 구역에는 꽃이 없는 탓인지 사람 대신 인근 늪지에 서식하는 물닭과 비둘기 등 새들만이 땅을 연신 쪼아대고 있었다.

이렇게 민둥산처럼 변한 구역은 약 7만∼8만평으로 전체 유채꽃밭의 절반가량에 달한다.

부산시가 10년째 일궈오던 대저생태공원 유채꽃밭이 올해는 절반 규모로 줄어든 것이다.

부산시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지난가을 파종을 한 뒤 겨우내 자란 유채꽃이 4월에 만개해야 하는데 절반밖에 피지 않았다"고 말했다.

[르포] '전국 최대' 대저생태공원 유채꽃밭 절반이 사라졌다
전국 최대 유채꽃 군락지인 대저생태공원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었던 것일까.

문제의 발단은 2020년 말 철새 분변에서 조류독감(AI)이 발생하면서 대저생태공원 유채꽃밭에 일반인의 접근을 막았고,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봄꽃축제를 취소하기로 하고 유채꽃밭을 갈아엎은 데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채 꽃밭이 파헤쳐지자 매년 2월이면 떠나야 할 겨울 철새들이 이곳의 유채꽃과 보리를 마음껏 먹으며 3월까지 눌러앉았다.

대저생태공원은 낙동강하구 철새 도래지에 속하는 구간으로, 겨울이면 인근 늪지에 수만 마리의 철새가 서식하고 있다.

[르포] '전국 최대' 대저생태공원 유채꽃밭 절반이 사라졌다
올해의 경우도 이곳을 찾아온 겨울 철새가 1년 전 겨울 상황을 기억하면서 떠나야 할 시기보다 늦은 3월까지 계속 머물며 먹이활동을 이어갔고 그 결과 유채꽃밭이 황폐해진 것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물론 평소에도 철새, 텃새들이 이곳에서 먹이활동을 하지만 지난해부터 급격히 심해졌다"며 "철새들이 오래 머물면서 늪지와 가까운 꽃밭을 중심으로 전멸해 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겨울 철새들은 유채꽃의 줄기, 씨앗을 먹는데 특히 쇠기러기는 유채꽃의 뿌리까지 남김없이 파먹는다"며 "산성으로 부식성이 강한 새똥도 점점 많아져 식물 생육에 악영향을 끼쳤다"고 덧붙였다.

[르포] '전국 최대' 대저생태공원 유채꽃밭 절반이 사라졌다
환경단체들은 먹이가 풍부해진 탓에 겨울 철새들이 날이 따뜻해져도 이곳을 떠나지 않은 것으로 추정했다.

백해주 초록생활 대표는 "겨울 철새들의 먹이가 봄에도 먹을 수 있을 만큼 풍부하다 보니 제때 떠나지 않고 오랫동안 머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겨울 철새들의 이런 생태 변화는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르포] '전국 최대' 대저생태공원 유채꽃밭 절반이 사라졌다
부산시는 다가오는 겨울 어떻게 하면 철새와 공존할 수 있을지 벌써 고심에 빠졌다.

부산시는 매년 유채꽃과 함께 약간의 보리를 심는데, 지난해에는 철새 먹이용으로 보리를 20∼30% 더 심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부산시 관계자는 "유채꽃밭을 일구는 것과 새를 보호하는 것 모두 중요한 문제"라며 "먹이터 추가 조성 등 대저생태공원에서 두 동식물이 공존할 방법을 찾는 것이 숙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