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유가가 7% 이상 급등하며 배럴당 110달러 선을 다시 넘어섰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미국에 이어 EU까지 러시아 원유 수입을 중단하면 세계적인 원유 공급 부족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EU가 당장 금수 카드를 빼들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EU, 러시아 원유 수입 금지 검토

EU, 러 원유 수입금지 검토…국제유가, 110달러 재돌파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원유(WTI) 4월물은 7.09% 오른 배럴당 112.12달러에 마감했다. WTI가 종가 기준으로 배럴당 110달러를 넘긴 건 지난 8일 이후 약 2주 만이다. 같은 날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북해산 브렌트유는 7.12% 상승한 배럴당 115.62달러로 장을 마쳤다.

이날 두 유종이 나란히 7% 이상 급등한 이유는 EU의 러시아산 원유 수입 중단 가능성 때문이다. EU 회원국들은 추가로 내놓을 러시아 제재안에 러시아 원유 수입을 금지하는 안을 포함할지를 두고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EU가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제재에 소극적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변화다.

EU 회원국의 의견이 일치할 것인지는 변수다. 27개 회원국 전부가 찬성해야 러시아 원유 금수 조치를 시행할 수 있다. 이날 EU 외무장관 회의에서 리투아니아 아일랜드 등은 제재안에 찬성했다.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독일 헝가리 네덜란드 등은 반대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금수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EU 내에서 확산하는 분위기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보도했다.

앞서 러시아 원유 수입 중단을 선언한 미국 영국에 이어 EU까지 가세하면 러시아 경제는 큰 충격에 노출된다. 러시아가 수출하는 원유의 절반가량이 유럽으로 향한다. 지난해 러시아의 전체 수출액 중 37%가 원유 및 석유제품이었다. EU도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경제적 충격을 피하긴 어렵다.

EU가 즉각 러시아 원유 금수 조치를 발표할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천연가스는 제재 대상에서 제외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EU가 필요로 하는 천연가스 중 40%가 러시아산일 정도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러시아 원유 대안 마땅찮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사태 추이에 따라 국제 유가는 변동성이 확대됐다. 미국이 러시아 원유 금수 조치를 계획 중이라는 소식에 공식 발표 직전인 지난 7일 WTI 선물은 장중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섰다. 브렌트유는 배럴당 140달러에 근접하며 2008년 7월 이후 약 14년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그러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평화회담을 열며 화해 가능성이 커진 15일에는 두 유종 모두 배럴당 1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앞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서방 제재 등의 여파로 다음달부터 러시아 원유 및 석유제품 공급이 하루 300만 배럴가량씩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러시아 원유를 대체할 생산지는 마땅치 않다. 그나마 산유국 중 생산 여력이 충분하다고 평가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적대 관계인 예멘 반군으로부터 국영 석유시설을 공격당하고 있다. 공격의 심각성에 따라 사우디의 원유 공급 능력이 저하될 수 있다는 뜻이다.

미국 셰일업계도 대안이 되지 못하고 있다. WSJ는 미국 셰일기업들이 최근 6개월 동안 유전 시추공을 20% 이상 늘렸지만 셰일오일 등의 생산량을 대폭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전했다. 투입 비용 대비 생산성이 좋은 시추 후 미완공 유정(DUC·필요할 경우 즉각 생산이 가능한 유정)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시추공이 늘어났다고 해도 신규 DUC 확보에 투입되느라 셰일오일 등의 증산으로 바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얘기다.

이고운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