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만의 가뭄, 작은 불씨도 쉽게 확산…변덕스런 바람·험한 지형에 고전
야간 진화헬기 등 장비·인력 확충…활엽수 등 산불 방어림 조성 '과제'

지난 4일 경북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이 역대 최대 피해를 낸 데는 50년 만에 찾아온 극심한 겨울 가뭄과 강풍 등 기후 요인이 자리 잡고 있다는 평가다.

또 산불이 발생한 면적이 방대하고 산세가 험준한 데다 짙은 연기로 시계가 좋지 않았던 점도 피해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 50년 만의 가뭄에 강풍…최악의 날씨
이처럼 이번 동해안 산불 피해가 막대했던 가장 큰 이유로 기후 조건이 첫 손에 꼽힌다.

올해는 전국적으로 50년 만의 겨울 가뭄이 기승을 부리면서 야산의 낙엽과 풀 등이 마를 대로 말라 있어 작은 불씨라도 아주 쉽게 불이 붙을 수 있는 조건이다.

여기에 강한 바람은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최초 발화 지점은 울진군 북면 일대는 당시 순간 초속 25m가 넘었다.

산불 발생 신고 접수 뒤에 산불 진화 헬기가 이른바 '골든타임'을 약간 넘긴 52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불은 확산했다.

지난 4일 오전 11시 17분에 최초 신고가 들어온 지 5시간여 만인 당일 오후 5시께 불은 울진지역을 넘어 강원도 삼척으로 번질 정도로 급속하게 퍼졌다.

[동해안 산불] 가뭄·강풍 등 결국 기후요인…선진국형 방재 전환해야
◇ 면적 방대하고 전국 곳곳 산불로 헬기 분산
산불이 번진 면적이 엄청나게 넓었던 점도 신속한 진화를 어렵게 해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이다.

발생 직후부터 전국 소방동원령 2호가 발령된 가운데 진화인력 5천여 명, 헬기 50여 대가 즉각 투입됐다.

그러나 산불 발생 이틀째인 지난 6일에 이미 산불 영향구역이 1만2천여ha로 서울 여의도 면적의 40배를 넘겼다.

여기에 오락가락하는 강풍의 영향으로 울진에서만 10여 군데로 나눠 진화 작업을 벌여야 할 정도 불이 이곳저곳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전국 곳곳에서 산불이 동시다발로 발생해 진화 헬기가 분산돼 있어서 동해안 쪽에 장비를 집중 투입할 수 없었다.

◇ 연기로 인한 시계 제로…접근 어려운 험한 산세
산불 현장 상공에 연기가 짙게 끼면서 시계가 극히 좋지 않았던 점도 신속한 진화를 어렵게 만들었다.

베테랑 헬기 조종사들마저 불이 확산하는 지점을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상황이 며칠째 이어졌다.

산 곳곳에 거미줄처럼 연결된 송전선과 송전탑도 공중 진화 작업을 어렵게 했다.

불길이 거셌던 응봉산(해발 999m) 일대는 손에 꼽힐 정도로 산세가 험준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진화요원들이 접근해 직접 불을 끌 수 없을 곳이 많아 낮시간에 헬기를 이용한 공중 진화에 주로 의존해야 했다.

또 산에 암벽이 많고 자갈돌이 많아 불에 달구어진 돌이 계속해서 열기를 내뿜으며 꺼졌던 불씨를 되살리기를 반복했다.

[동해안 산불] 가뭄·강풍 등 결국 기후요인…선진국형 방재 전환해야
◇ 이제는 대책이다…장비·인력보강 등 시급
열악한 진화 장비 및 인력 상황도 빼놓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방대한 지역에 강풍까지 불어 진화가 어려웠지만 상대적으로 산불 확산이 덜한 야간에는 진화대원들의 힘만으로 불을 꺼야 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밤에도 진화 작업을 할 수 있는 헬기가 1대 있지만 효율성, 안전 등 문제로 야간 진화는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형편이다.

평상시 산불 예방과 진화를 위해 편성한 인력이 많지 않은 것도 개선점으로 거론된다.

울진지역에는 산림청 소속 인력은 특수진화대원 12명, 예방진화대원 49명 등 70명 정도에 불과하다.

광역단체인 경상북도가 산불감시인력 2천580명, 산불 전문 예방진화대 1천200여명을 따로 운영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면적이 넓고 산이 많다는 점에서 절대적으로 숫자가 부족하다는 평가다.

울진지역 주요 산봉우리 13곳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돼 있으나 첩첩산중에서 연기를 신속하기 감지하는 게 쉽지 않은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 불 확산 키우는 소나무 군락…"활엽수 자랄 여건 만들어야"
울진 등 동해안 지역이 소나무가 주로 자라는 곳이라는 점도 산불 확산의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소나무 송진은 기름기가 들어 있어 불이 붙으면 좀처럼 꺼지지 않고 센 화력을 유지하는 특징이 있다.

이에 따라 산림당국은 지금까지 참나무 등 상대적으로 불에 강한 활엽수를 중간중간에 심는 방안을 강구해 왔으나 좀처럼 성공하지 못했다.

동해안 지역이 토질이 두껍지 않고 척박해 활엽수가 제대로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산림당국 관계자는 13일 "수종을 갱신해 대형 산불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며 "활엽수가 자랄 수 있도록 어떤 토양 여건을 만들어 줘야 하는지 꾸준히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4일 경북 울진에서 발생해 삼척까지 번진 산불은 총 2만923㏊의 산림 피해를 낸 뒤 발생 열흘 만인 13일 주불이 진화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