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5년' 오늘 결정…새 정부의 노동정책 과제
향후 5년 대한민국호(號)의 향방을 가를 선택의 날이 되었다. 1987년부터 30년 가량 12월에 치르던 대통령선거를 처음으로 3월에 치른 지 벌써 5년이 지났고, 사회 각 분야에도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노동 분야에 있어서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최저임금 상승, 주52시간제도, 직장내괴롭힘 금지제도, 노동조합 설립신고의 완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추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 입법이나 제도 면에서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모든 정책이 그렇듯이 공과가 있을 것이고 정확한 평가는 후일 역사의 몫일 것이다.

이제 곧 출범할 새로운 정부에서의 노동법 과제는 어떨까? 대선후보들의 공약 사항 중 노동분야 공약은 두드러진 것이 없어서 그런지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근로시간, 비정규직, 산업안전, 처우개선 등이 언급되고 있고 모두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슈이지만, 원론적 접근에 그치고 있을 뿐 아니라 정부 주도의 추진보다는 민간 영역의 과제로 풀어갈 부분도 적지 않다.

4차 산업혁명의 본격화로 노동 분야에 많은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데에 거의 이견이 없다. 국제경쟁에 뒤처지지 않도록 정부에서는 변화를 직시하고 노동분야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IT기술의 개발로 기존에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유형의 산업이 속속 출현하고 있다. 변혁의 시기에 인류의 유전자에 커다란 족적을 남길 것이 분명해 보이는 코로나 팬데믹은 여기에 엑셀레터로 작용하였다. 기존 근로자들의 고용형태 또한 다직장형, 자본가형, 연구개발형, 네트워크사업형으로 분화되고 다양화되면서, 고루한 생각과 그간의 경험으로는 개별적 근로관계나 집단적 노사관계 모두 해결할 수 없고, 그 어려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화될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법으로 돌아와보면 이미 제정 후 70년이 지난 근로기준법은 근로시간, 임금 등이 모두 생산직 공장제 근로자에 맞춰져 다양한 고용형태를 모두 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공장노동법’이라는 비판을 흘려 들을 일이 아닌데, 공장제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 향후 늘어날 것인지를 생각하면 마냥 손 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당장 사무직만 보더라도 주52시간제가 적용되지만 하루 8시간 근로시간과 하루 1시간 휴게시간을 정확히 어떻게 구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도 없다. 일하다가 동료와 커피 마시는 시간, 밖에 나가 흡연을 하는 시간, 책상에 앉아 일하다가 카카오톡을 하는 시간,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통해 잠깐 뉴스를 접하는 시간, 혼잡한 점심시간을 피하려고 일찍 나가는 30분 정도의 시간 등 과연 근로시간인가 휴게시간인가.

그 동안 많은 사업장에서 사무직의 경우 고정OT 제도(포괄임금제)라는 신사협정을 통하여, 한 달에 일정한 연장근로수당을 고정 지급하되, 사무실에 머무는 시간이 다소 늘더라도 이러한 모호함을 고려하여 별도의 연장수당을 요구하지 않는 방식으로 평화관계를 유지하여 왔다. 이러한 역사성을 무시한 채 공장제 근로자에 특화된 근로기준법을 들이대서 포괄임금제가 공짜근로를 조장한다는 공격이 있었고 눈 앞의 이익을 위해서 많은 이들이 여기에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통계조사는 고정OT(포괄임금제)의 도입 이유는 공짜근로는 전혀 아니고 대부분 근로시간 산정의 어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최근 대법원이 사무직 고정OT의 경우 실제 시간외근로의 대가라고 하여 신사협정의 취지를 존중하는 판결을 내린 것은 고무적이다(대법원 2021. 11. 11. 선고 2020다224739 판결).

특수형태근로종사자(이른바 특고) 문제는 또 어떤가. 앞으로 새롭게 등장할 직업은 현행 기준으로 분류하면 모두 특고에 해당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는 플랫폼 노동이다. 근로자 대(對) 근로자 아닌 자라는 이분법적 기준을 적용하면 근로자에게만 적용되는 근로기준법은 애매해질 수밖에 없다. 근로자가 법을 통한 특별한 보호를 받는 이유는 사용자와의 사용종속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특고도 특정 사업자 혹은 타인과의 관계 또는 협업을 통하여 일을 하므로 상호간 영향을 주고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관계가 사용종속관계에 다름 아니라고 본다. "뭐 어떻게 보든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는데, 특고의 근로자성은 대부분 ‘퇴직금’ 지급 여부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점에서 꼭 한번 짚어 봐야 하는 부분이 있다. 특고가 계약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근로관계를 형성하겠다고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근로자로 살면 좋은 점도 있지만 복무규율에 따라야 해서 불편하고 세금도 불리하기 때문이다. 계약관계가 종료된 후에는 이런 불리한 점이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근로자라고 비로소 주장하면서 퇴직금을 청구한다. 당초 둘 사이의 관계가 근로관계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계약 상대방으로서는 당초 생각지도 못했던 우발채무가 발생하고 이는 보험료, 이용료 상승 등 사회적 비용이 된다. 법원이나 고용노동부를 통하여 근로자로 인정되더라도 정작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별로 없고 다른 계약상대방을 찾아 다시 동일한 계약을 체결한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고 법적 안정성이 허물어지는 것이다.

새 정부에서는 고용형태에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사회 발전이나 실업률 감소에는 근로자와 근로자 아닌 자의 구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직시하고 특고 등 다양한 고용형태 종사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사회적으로 플러스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새 정부는 ‘공정성’에 대한 높은 요구도 놓치지 않아야 한다. 평생 직장이라는 말이 사라진 지 오래된 지금 굳이 MZ세대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이제 현재 본인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곳에서 일을 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떠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특히 IT업계를 중심으로 'A 플레이어'들은 더 높은 보수를 제시하는 순간 언제든지 어디로든지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당연하다. 직장 내에서 젊은 세대들은 내가 왜 저 사람과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하느냐, 나이가 많다는 게 왜 보상의 기준이 되느냐며 항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각자의 능력과 성과에 합당한 보상에 대한 요구는 커져가지만 성과주의 보상 체계는 노동법의 이른바 동일노동 동일가치, 차별금지에 가로막혀 좌초되는 경우가 있다. 동일노동 동일가치, 차별금지가 현실에서는 동일한 연차나 동일한 직급에서는 모두 비슷한 보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일노동 동일가치, 차별금지가 미래에도 다양한 고용형태와 새로운 세대의 인식을 담아낼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고 있다. 전세계 유례가 없는 호봉제, 연공급제, 정년제 등 난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기존의 노동법 체계는 4차 산업혁명 과정에서 노동문제를 풀어 나가는 데 유용한 도구로 기능하지 못한다. 이제는 일을 하는 관계에서 고정적인 틀을 강제하기 보다는 유연성 있게 대응하고, 획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단계로 나가야 한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전환은 다소간 고통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나아가야 하는 방향임이 분명하다. 새로운 정부가 5년 안에 이런 난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적어도 패러다임 전환의 첫발을 내디뎠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기를 바란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