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가 그제 발표한 ‘기업지배구조 보고서 가이드라인’ 개정안은 끝없이 심화하는 금융당국의 관치와 규제 마인드를 여실히 보여준다. 경영 투명성 개선이란 명분을 앞세워 최고경영자(CEO) 승계 방안에 대한 상세 계획까지 공시토록 요구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앞으로 상장사들은 후보군 선정, 교육·평가제도 운영 등 CEO 승계의 구체적 방식과 진행 과정을 문서로 만들어 공개해야 한다. 개정안은 자산규모 1조원 이상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에 올해부터 적용한 뒤 2026년부터 모든 상장사로 확대한다.

G20(주요 20개국)와 OECD 회원국의 기준을 참고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는 게 금융위 설명이지만 아전인수식 해석에 기초한 명백한 과잉규제다. G20·OECD 모범규준은 ‘이사회가 승계절차를 감독할 의무가 있다’는 식의 포괄적 기준만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개정 가이드라인처럼 승계 방안에 대한 세세한 공개 요구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경영 간섭이다. 유능한 경영자를 키우고, 자신들만의 경영권 구조를 설계하는 것은 어느 기업에서나 대외비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적절한 지배구조를 택할 수 있는 재량권을 주는 자율 권고일 뿐이라지만 돌아가는 모양새는 정반대다. 지난달에는 ‘경제 검찰’로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가 ‘2022년 업무계획’에서 ‘기업지배구조 관련 공시항목 강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정부 뜻을 거슬렀을 때 감당해야 할 불이익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 ‘자율 규제’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개정 가이드라인에 담긴 ‘물적분할 규제’ 조치에서도 기업과 경영진에 대한 편협한 인식이 넘친다. 금융위는 물적분할 시 자사주 매입, 배당 확대 등 주주환원 방안을 강화할 것을 명시했다. 세계 최대 기업 애플이 사업 초기 무배당 정책으로 확보한 현금을 혁신 동력으로 삼은 데서 보듯, 배당·자사주 정책 역시 핵심 경영전략이다. 기업마다 사정이 제각각인데 정부가 일방적으로 강요한다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개연성이 커진다.

가장 걱정되는 건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기업이 늘 ‘정치판의 졸(卒)’로 전락하는 상황이다. 오랫동안 지주사 체제를 지배구조 모범으로 꼽았던 진보진영에선 중대재해처벌법상 CEO의 책임회피에 악용될 것이라며 포스코의 지주사 전환을 공격하는 게 현실이다. CEO 승계 보고, 배당 개입 등이 설사 옳은 방향이라 하더라도 최종 선택은 보유 주식이 한 주도 없는 정부가 아니라 주주에게 맡겨야 한다.